무력감의 첫 번째 친구를 찾았다, 연결 중독.
팝콘 브레인. 뇌가 빠르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져 현실에서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현상.
도파민 중독을 스스로 치료해 보고 효과가 있는지 보고 싶다는 열망의 가장 기저에 있는 감정은 뭐니 뭐니 해도 '무력감'이었다. 무력감은 우울이나 슬픔, 외로움과는 매우 다른 결의 감정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이라고. 우리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질 때 소위 말하는 호불호가 생길 수 있는데 사실 그 감정조차도 무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좋아할 때는 좋아하는 마음에 저항 없이 휘감긴다.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는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강한 열정으로 대상을 의식한다. 어찌 되었든 생의 한 전장에 기꺼이 참여하는 마음이다.
무력감은 언제든 며칠이든 내가 숏폼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매 순간에 나를 무섭게 덮쳐왔다. 비교적 덜 감성적인 편이라 생각하는 나는 그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무엇이고 왜 왔는지를 생각했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내가 게을러터져서'였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게을러 '터져서'.
이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했다. 너는 일상의 여유로움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너무 바쁜 삶에 달콤한 디저트로 현명하게 넣을 줄 아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의 질책을 의미했다. 너는 배가 불러도 더 많은 음식을 원하는 무지한 상태의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비난을 의미했다. 너는 단순히 내일이면 극복할 수 있는 게으름의 상황이 아니라 그것이 무르고 물러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일상의 흐트러짐을 저질러버린 죄인이라는 의미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것은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책임이나 의미를 나누자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에 따라오는 감정은 극심한 불안감과 외로움이었다.
불안감이야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 그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져오는 자연스러운 알고리즘이었다면, 외로움은 이런 고통 속에 홀로 방치된 나 자신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지만 누군가와 절실히 나누고 싶은 삶에 대한 나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심한 고통을 함께 나눠줄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도 오프라인의 공간에서도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 온라인의 공간.
온라인의 공간에서 나는 누구와도 실제로 마주하고 있지 않았고 그것이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상태로.
내 곁에서 농밀한 이야기던 시답잖은 이야기던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어디에도 없지만 놀랍게도 매일의 일상에서 나는 그 모든 이들을 알고 있었다. 현실이 아닌 세계에서 '만나는' 그 모든 이들은 비록 실제로 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고 현실에서 만나지 않는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퍼부어대는 그들의 일상은 공해처럼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은 사실뿐만 아니라 감정도 품고 있었다. 나 역시 나의 일상과 감정이 있지만 그 누구의 일상과 감정도 '공유'되지는 못했다. 그저 사실관계에 대한 알람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공간에 있고 싶었다. 내가 아는 이들의 시시각각 업데이트 되는 일상과 혹여 그 안에 나에 대한 정보나 감정이 어느 정도는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의 해석은 꽤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일방의 에너지의 투여는 엇나가거나 의미 없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 엇나간 에너지를 해석하고 희석하고 때로는 의심하고 쿨하게 무시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들의 향연이 온라인의 모든 전장에서 매일이 아니라 매초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연결에서 초와 초 사이를 잇는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었고, 그 순간마다 의미를 가질 수도 없었지만 신경은 늘 쓰였다. 외로웠다.
연결의 모든 순간에 누군가와 누군가 그리고 누군가는 홀로(그러나 버젓이) 누군가는 어딘가에 누군가는 무언가와 누군가는 어떤 생각과 귀에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처럼 존재와 존재를 거듭했지만 나는 그 모든 정보의 향연을 샤워기에서 물을 맞듯 맞아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존재했다.
그 존재성을 이해하고 찾고 싶어서 나는 더 계속 들여다보아야 했다.
들여다보면 이해하게 될 것 같았던 것일까.
인간은 어떤 노력을 해도 희망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 무력감을 느낀다.
나를 불러주겠지라고 내심 기대했던 주변의 어떤 그룹의 모임 사진을 문득 마주할 때,
저렇게 연예인 같았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 무심하게 올라와 일상처럼 연주될 때,
오프라인에서보다 훨씬 끈끈해 보이는 그들의 수많은 연결고리를 하트와 다정한 댓글로 하루에도 수없이 목격할 때,
의도 없이 진행된 연결의 흐름을 통해 알고 싶지 않고 바라지 않았던 누군가의 뿌듯한 모습을 목도하게 될 때.
즐거움을 위해 문을 열었던 나의 방문이 나를 위축되고 슬프게 할 때 나는 찾았다,
나와 관계는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고 쉽게 소비할 수 있고 보고 지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의 영상들을.
존재와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나의 질문들이 꼰대와 소위 말하는 씹선비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