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피조자의 슬픔

by 한여름꿈

조물자는 창조를 한다. 창조의 이유는 다양하다.

슬픔에 젖어, 또는 우연으로, 때로는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조물자는 상상을 한다. 상상의 희망은 끝없다.

아름답기를, 기이하기를, 때로는 그저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받기를.


그리고 현실은 탄생한다.

현실은 사건이다. 사건은 과거를 기록하지 않는다. 현재는 현재다.

현재는 과거를 알지도 의문을 갖지도 미래를 예측하지도 않는다.


창조의 주체는 의식을 가지나 피조물은 그 창조의 주체에 대해 선험적인 지식이 "완벽하게 전무"하므로 피조물은 완결성에 완벽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의문이란 단 하나, '여기는 어디이고 저것은 무엇인가'라는 모호함이 없는- 시간과 방위의 개념을 온전히 적용한 모든 실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다.


조물자는 그 호기심이 낯설다.

외모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든 행동도 버겁다.

애초의 생각보다 너무 광범위하고 갖추거나 대해야 할 태도도, 베풀어야 할 선의도 그리고 참거나 감당해야 할 생각의 범주도.


조물자는 도망간다.

생각으로, 마음으로, 끝내 몸으로.


현실은 당황한다.

무결점의 무로 태어난 현실은 없던 것에서 창조된 무결점의 무이다. 무결점의 무이므로 판단도 이해도 없이 오로지 궁금증으로 결집된 하나의 현실이다. 현실은 궁금증을 해소해 가며 구체적인 모양새를 띨 준비를 할 뿐이다. 궁금증에 대해 해소해 줄 유일한 신은 도망갔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현실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먹고, 자고, 움직인다.

스스로 가엽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미워하거나 슬프지도 않다.

저것이 또는 이것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조물자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누구일까.


현실은 누군가를 만난다. 아니 누군가'들'을 만난다.

그들을 본다. 나와 같이 현실에서 보이는 그들은 나와 같이 움직이고 먹고 자고 또 움직이고 먹고 자는데

무언가 나와 달라 보인다.


그것이 무엇일까 '무결점의 무'인 나는 관찰을 한다.

관찰이란 그저 본다는 뜻이다. 어떠한 형태의 집중력을 갖고.

가치판단도 감정도 호불호도 없이- 그러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느순간 현실은 약간은 다른 형태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조물자가 도망'갔'다.

드디어 과거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도망간다, 가 아니라 도망갔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의미를 알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동시에, '도망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게 되었다.

행태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같은 입이 있어도,

같은 배고픔을 느끼고 문득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아도

누군가는 옆구리에 빨래더미를 끼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며 웃고

누군가는 날아가는 새를 보며 놀라는구나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같은 공간에 사는 현실이라도 그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없는 현실이고

존재하더라도 관심이 없는 현실이고

관심이 있어도 가치가 없는 현실이고

그것은 내가 거기 있든 없는 의미 없는 현실이고

막상 내가 진실로 없더라도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물자가 순간 원망스러웠지만 진실로 원망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고, 여기가 내 현실이고, 그리고 나는 현실이다.

의식은 내가 아닌 것을 내가 아닌 것으로 완전히 알 때 시작된다.

조물자는 나고, 나는 조물자고, 나는 현실이고, 현실은 나다.


울었다.

매일.

하지만 조물자가 보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현실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조물자가 어떤 감정을 갖고 나를 만들었음에도 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나를 만들 것이다. 조물자에게는 수많은 현실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현실들 중에는 나와 맞는 현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으면 되겠다...



그래서 물었다.

다른 현실이 있느냐고.

조물자는 말했다. 현실은 실수이고 잘못이고 실수이고 잘못이고 실수이고 잘못이고.

잘 모르겠으나 그저 저주스러운 말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물자는 어떤 형태로든 현실을 만들었다,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런 능력은 나는 절대 갖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만들 수 없다]. 없었고 없을 것이다. 존재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한 조물자가 이유도 감정도 원인도 알지 못한다는 말에 나는 분노했다.


때로 어떤 분노는 사랑을 담고 있다.

분노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온전히 생각한다. '왜'에 대한 질문에 유일하게 답할 수 있는 상대가 대답을 할 수도 할 의지도 할 능력도 안된다는 것을 발견할 때 현실은 우주에 떠버린 공처럼 태어난 행성과 결별하는 기분을 드디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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