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곳이 그냥 나의 고향이다.
달리기 능력이 향상되다 보면 누군가에게 뽐내고 싶어서라기 보다도 달릴때의 여러 쾌감이 나의 상황이나 의지를 압도할 때가 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달릴때의 여러 쾌감에는 세속적인 것들도 꽤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며칠 전 약간 극한 상황에서 10km런을 할 일이 있었다. 이미 다른 운동으로 체력을 약간 소모한 상태였지만 30분 정도 휴식 후에 미리 약속이 되어있던 런이었다. 사실 나는 이 10km런을 하고자 이 상황에 온 것이라 내게는 맛있고 기대되는 메인요리는 이 런이었던 셈이다. 주말에 시간이 될 때 종종 혼자서도 뛰는 거리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얼마나 잘뛰는지 참여하고 같이 뛰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여한 멤버중에 가장 잘뛰는 이가 선두를 서서 길을 텄다. 나는 열심히 따라갔다. 길이 험한 것보다도 초반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문제는 초반 페이스가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도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따라간 나였다. 약 50m의 거리차를 두고 계속 따라갔다. 워치를 보니 평소에 뛰던 페이스보다 30초 정도 빨랐다. 달려본 이들은 알겠지만 페이스에서 30초 차이는 꽤나 큰 체력 소모와 호흡의 차이를 일으킨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 페이스를 계속 따라갔고,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갔고, 평소와 다르게 워치가 10km라는 숫자를 찍기를 간절히 바랬고, 10km를 띄우자 마자 바로 멈추었고 (여운따위 없이) 너무나 불행한 런이었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각오하고 나간 자리에서 내 존재가치와 능력을 입증하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이를 악물고 따라가는 일은 집념이고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다. 모든 일은 즐거울 수 없다. 때로는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때는 즐기고 사랑했던 내 모습이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즐겁고 사랑했던 일을 두려움과 부담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은 다음의 단계로 가는 숭고한 일일까 아니면 불행한 일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한가지 명확한 것은 그 일을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기에 그 일이 내게 몇번의 상처와 부담감을 안겨도 끌어안게 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내 몸과 마음이 조금 다칠지라도.
나는 지금 사는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 D라는 도시에서 살았다. 그곳은 속되고 흔하고 구닥다리같은 표현으로 별천지였다. 음, 심플하게는 나는 그 도시를 사랑했다. 그 도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도시이고, 초반에 아무것도 없는 그 도시에 들어가 내 삶의 기반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내었던 도시였다. 슬리퍼를 끌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극장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삼면을 모두 비추는 화면에서 맥주와 소세지를 먹으며 [보헤미안 랩소디]를 구경했다. 거의 대부분의 고속열차가 정차하는 역사가 캐리어를 끌고 가는 거리에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가게와 술집들이 나와 지인들의 만남에 즐거움을 주었다.
그곳에서 찬란한 시기를 보내던 어느날 어쩌다 이사를 오게 된 지금의 도시 K에게서 처음 느낀 인상은 '하늘이 왜이리 넓지?' 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나라의 같은 지구인데 이상하게 느껴질만큼 하늘이 넓었다. 내가 그 질문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했을 때 옆에 있던 이들은 '하늘은 원래 넓은데' 파와 '하늘이 넓다는 게 무슨 말이지' 파로 나누어졌다. 오랜기간 사랑했던 도시를 떠나 원치않은 곳에 정착한 내 입장에서 K도시는 항상 마뜩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단 하나, 왜이리 하늘이 넓지-라는 생각은 사실 '음? 다른 건 몰라도 이 하늘이 너무 좋은데'와 맞닿아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직장을 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생활을 구하고 또 정을 붙여도 왜그런지 이 도시는 지난 내가 살았던 도시에 대한 애정을 대체하지 못하고 나는 '하늘은 좋지만 너는 싫어'라는 이도저도 아닌 포지션에서 어정쩡하게 머물러야 했다.
스스로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하고 여기가 아닌 저기를 생각하는 상태가 아마도 우울일 것이다.
평균 페이스보다 1분 30초 정도 더해서 늦게 달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심폐의 활량을 늘리고 달릴 수 있는 용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어느정도 훈련과 적응이 된 상태이기에 이제 막 달리기를 하는 이들과 달리면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 정도라면 쉼없는 대화를 하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페이스이다. 숨을 버거워하는 이들과 대조되어 나는 그 옆에서 말을 하며 달린다. 나는 언제부터 말을 하며 달릴 수 있었을까. 아마 처음부터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처음에 그 힘들었던 나의 페이스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분명 나도 버겁고, 힘들고, 숨차고, 그만하고 싶고, 그리고 외로웠을텐데. K도시에서 가장 큰 변화는 강제적 집순이 생활이었다. 아마 찐 집순이 스타일의 사람들이라면 내 생활을 보고 그게 무슨 집순이냐 할테지만 적어도 늘 누군가를 만나고 사교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웠던 내 입장에서는 한달에 한번은 커녕 두서달에 한번의 모임을 갖게 된 내가 진정한 집순이로의 전향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는 고즈넉하고 넓다. 그냥 모든것이 다 넓다.
그리고 나무가 아주 많다. 하늘이 넓다. 새가 아주아주 많다. 비행기도 자주 날아다닌다.
퇴근길 저녁 노을을 뚫고 하늘을 수영하듯이 훑으며 가는 비행기는 꽤 낭만적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인간보다 더 정확히 알려주는 철새들의 도열한 장관은 또 어떠한가. 또 다른 의미의 한강변은 매일 아침 내가 달리기를 하는 트랙이다.
삶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사실 새와 비행기를 제일 좋아했다. 아, 구름도.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며 귀가하지 않는 부모님을 노을이 지는 그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방안에 있는 것보다 옥상에서 구름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비행기는 서른에 처음 타봤다. 그 전에 비행기가 너무 좋아서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좋아서) 아빠를 졸라 공항에 놀러가 본 적은 있었다. 평생 공항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부모님도 그날 그곳에서 즐거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주 잠시의 즐거움 후에는 이건 우리것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주차비 아까우니 집으로 얼른 가자고 하셨지만.
내가 그토록 좋애했던 새와 비행기를 이렇게 매일 자주 보는 삶이 내게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몇년전만 해도 하지 못했고, 처음 이곳에 와서는 싫어하기조차 했다. 어릴 때 새와 비행기를 좋아했던 소녀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정반대의 화려한 도시에서 보냈고, 그 도시를 그리워하느라 K를 아주 오래 미워했다.
사실 내 고향이라 하면 D도 아닌 것일진데 나는 왜 그토록 긴 시간 D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고향이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나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부정하고 미워한다면 그래서 매일 일하고, 먹고 자고 쉬는곳이 매일같이 마뜩치 않다면 그래서 끊임없는 '언젠가'를 꿈꾸기만 한다면 그 삶 자체가 지옥이 아니면 지옥이 과연 어디일까.
모든 외로움은 존재하지 않음에서 잉태된다. 내가 태어난 애초의 그 어떤 곳이었을 도시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끊임없이 살펴주지 않으면 안되는 그저 생명체에 불과했으리라.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 곳은 내게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은 성장기였다. 나는 투쟁해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부모님은 하루라도 빨리 나를 키워 짐을 덜어내고 싶어했고 나는 주먹을 꼭 쥔 틈새로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모래알이었다. 성장 후 어찌하다 가게 된 도시 D에서 나는 투쟁을 거듭해 내 삶을 만들어갔고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하였으나 정서적으로는 가장 피폐했으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성취를 이뤄낸 곳이 되었다. 그리고 한숨을 고르고 떠나와 도착한 이 곳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 있는 법을 배우고 조금은 심심하다고 느낄 정도의 호흡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내 고향일까.
한때는 나는 고향이 없는 이방인처럼 마음이 떠돌았으나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당장 어디로든 가서 살게 된다면 그냥 그곳이 내 고향이구나 생각하고 그 순간을 살면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을 귀히 여기고 그들과 함께 하루하루 보내는 일상에만 의미를 두면서 그저 감사하고 조심스레 지내며 나를 잘 지키고 따뜻하고 맛난 밥을 챙겨먹을 수 있다면, 그냥 그곳을 내 고향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오래전 친구들은 이미 연락처를 잃었고, 가끔 만나는 이들에게서도 지나간 추억의 도돌이표 외에는 새로운 교점을 찾기가 힘든 경험을 번번히 하지 않았던가. 지금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기억을 쌓고, 가끔 먹을 거리를 나눠주기도 하는 이들이 친구가 아니라면 누구가 친구일까. 추억에 묻혀 있어야 하고, 희생을 나누어야 하는 이들보다 오늘과 내일에 산뜻하게 만나 안부를 가벼이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그 관계도 나쁘지 않으리라. 내가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그 무엇을 지금이라도 알려주는 도시가 있다면 그 도시가 고향이 되어도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달리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