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km, 새와 함께.

-날아가는 새들은 항상 씩씩하다.

by 한여름꿈

그리스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신을 노하게 한 대가로 끊임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어느 정도 철이 든 후에 나는 그 형벌을 선택한 신의 센스에 감동했다. 사회에서 일이라는 것을 시작한 후 꽤 많은 스트레스와 암담함 그리고 불확실성에서 오는 고통들을 많이 겪었다. 인간관계는 매일이 덤이었고. 위궤양까지 얻을 정도로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 내 몫을 한자리 해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한 말이 단 하나 있었다. '버텨.'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언젠가 끝이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지금이 너무 괴롭고 막연해도, 비루하고 모욕적이어도 언젠가 끝이 난다는 것을 알면 나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어릴때부터 나는 달리기를 잘했던 것 같다. 빨리 달리는 것 말고 그냥 오래오래 달리는 일 말이다. 다행히도 내가 어릴 때는 '체력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필수 종목 중 하나는 오래 달리기였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 숨이 턱에 차올라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저절로 발이 리듬을 찾아 나를 앞으로 앞으로 내밀어주는 느낌이었다. 같이 달리던 친구들의 갈수록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포기하는 모습들은 나를 겁먹게 한 것이 아니라 묘한 자신감까지 불어넣어주는 것이었다. '참자, 참으면 돼.'


아픈 것도 잘 참고, 모욕적 언사도 비교적 매너있게 넘길 줄 알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나는 참을성있게 인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는 언제나 단 하나의 순간이었다. "끝나기는 하는 걸까?"

그렇다. 늘 생각했다. 끝난다는 보장만 있으면, 누군가가 이게 언젠가 끝난다고 말만 해준다면, 그것이 아무리 길고 험난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때, 쉽게 말해서 희망이라는 것이 없을 때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개의 인간이 그러하듯.


시지프스가 받은 형벌은 돌을 밀어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신이 선택한 형벌은 그에게서 희망을 뺏는 것이었다, 그것도 영원한.


한번은 10km달리기를 하는데 따라가려는 이의 초반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그 상태로 7km정도쯤 되어갈 때 솔직히 마음속으로 '그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기의 마음속으로 거리를 정하고 자유롭게 참여한 달리기였고 나는 원래 7km 뛸 생각으로 왔다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또는 앞서 가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특정 선수를 따라가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초반부터 일정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약간은 멀어지기도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하며 계속 그를 붙잡고 달리는 참이었다. 계속해서 워치를 들여다보는데 페이스가 조금씩 빨리지거나 유지되는 중이었다. 본래 내가 생각했던 페이스보다 30초 정도 앞선.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그만할까라는 자기 의심을 계속 했다. 달리기를 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서는 나는 이성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다. "왜?"라는 말을 좋아하고 매사에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납득일 쉬이 하는 내게 지금 이 상황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만 할까?"라는 혼잣말에는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었고 나는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쉬지 않고 쏟아낼 수 있었다.


'힘들어. 고통스러워. 이건 즐거운 달리기가 아니야. 내가 선수도 아니고 이걸 이렇게 힘들게 할 이유가 없잖아. 저 선수는 나보다 월등해. 내 페이스를 놓쳤어. 이렇게 달리면 무릎에 무리가 올지도 몰라. 비복근에 통증이 오래 남을 수도 있어.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일도 아니야. 멈출까? 멈출까?'


계절이 가을로 넘어서면 이곳에서는 장엄한 대열의 철새들을 볼 수 있다. 언제보아도 탁월한 그들의 비행은 시린 하늘을 뚫고 어김없이 해마다 반복되는데 하늘이 물이라도 된 것처럼 유려한 비행으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해마다. 단 한 해도 빠짐없이. 누군가는 그들을 그저 생존에만 프로그래밍 된 무의식적인 유기체로 보겠지만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단 한가지 문장을 늘 떠올렸다. "정말 기특하고 씩씩하다." 한번은 한강변을 따라 달리다 그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꽤 낮은 고도에서 비행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새들을 바라보며 같이 달려나갔다. 나는 땅에서, 그들은 하늘에서 각자 서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서로가 가진 신체의 한계 안에서 우리는 각각 중력에서 자유로운 느낌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나도 달리고 그들은 날고 있었다. 각자의 선택으로.


철새들은 아마도 날아가야 할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안에서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과 긴 여정이 언제나 안온하리라는 보장은 항상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묻지 않을 것이다. 왜 이토록 추워야 하는지, 왜 지난해에 찾아갔던 그 군락지가 없어졌는지, 왜 가는 길의 여정표가 되어주던 나무들이 사라졌는지, 왜 이토록 지난한 여행을 무한히 반복해야 하는지, 왜 올해는 이토록 비와 눈이 혹독하게 내리는지, 왜 동료를 때로는 새끼를 잃는지.


7km를 넘어섰을 때 나는 더이상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선택지는 사라졌고 그냥 내게는 10km를 같은 페이스로 가는 일만 남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10km를 채워야 했다. 그때부터는 생각을 멈추었다. 마음속에서 강하게 올라오는 그만 둘 수십가지의 이유를 누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활성화된다는 전두엽에 내 삶의 이정표를 새겨넣는 작업-만트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네 음절만 반복했다. 마음속에서 의구심이, 이제 그만 쉬자는 속삭임이 밀고 올라올 때 나는 마귀를 가두는 마법사처럼 주문을 계속 외었다. '할 수 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또다른 질문이 스스로를 비웃듯 불쑥 튀어올랐다. '무엇을?'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다시 마귀를 누르는 주문을 추가로 얹었다. '무엇이든.'


시지프스는 돌을 밀어올리며 웃었다고 했다. 보상은 커녕 어떠한 의미도 없고 끝도 없는 그 형벌을 받으며 그는 무한한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는 웃었다. 운명이 던진 과제를 그는 기꺼이 수용하며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행위로 만들어버렸고 그는 무의미함을 리추얼로 바꿔버렸다. 아무도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돌을 밀어올리는 것에 대해, 달리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주지 않을지라도 철새가 날아가듯이 씩씩할 수 있다. 삶이 던진 주사위 놀이같은 모든 상황 안에서 좋고 나쁨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기꺼이 꽉 끌어안아버리는 모습.

그냥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냥 달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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