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 수포가 생긴 날.

-당연한 이야기에 관하여

by 한여름꿈

어느 여름. 그날따라 유난히 뛰면서 약간 어지럽다고 생각했고, 어 이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쓰러질수도 있다고하는 더위먹는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살짝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벗어던지고 출근을 위한 샤워를 했다. 일요일 오전 7시 달리기였고 수업은 10시였으니 내 기억은 정확하다. 물론 여름은 새벽이 달리기 가장 좋을 때이나 오전 7시도 나쁘지는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그날 유난히 종종 보이던 낯선 얼굴의 러너들이 보이지 않았다. 더위를 즐기는 나였으나 이러다가 좀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러닝이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반가워서 짖는 강아지의 짖음이 너무나 귀찮스러웠다. 힘듦을 자처하는 것이 어느정도 러닝의 기쁨일진데 그날은 좀 힘들었다.


곧바로 샤워를 하고 출근을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바로 맞은 차가운 물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좋았다.

샤워 후 거울앞에 서서 머리를 말리는데 바지 허리둘레 주변으로 촘촘히 항의성 깃발처럼 몸에서 무언가가 돋아 있었다. 그저 바지가 남긴 자국이겠거니 하고 손으로 쓰다듬었는데 점자책같이 작고 오돌토돌한 무엇인가가 잔뜩 잡혔다. 살짝 힘을 눌러 쓰다듬어보니 토토톡 터진다. 물집이었다. 옷으로 감싼 피부였다. 한시간이 안되는 시간이었고 초반 3키로 이후에는 그냥 더위구나 했던 달리기였다. 원래 여름을 좋아했고 내 몸은 나를 그럭저럭 견뎌주고 있었다. 아니, 외려 더운 여름의 달리기를 하는 나를 보며 약간은 헤벌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각종 건물과 차안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토록 스스로를 잘 버텨내는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몸은 아니었다. 몸은 그 짧은 시간에 수포를 만들어낼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한참 일과 돈버는 재미에 빠져있던 어느 날이었다. 재미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때보다 돈을 덜버는 지금의 내가 그때 돈버는 것이 재밌었구나, 라고 반추하며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묘사이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정신력으로 무장하며 지내다보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고통의 역치가 타인보다 높은 편이 되어버린 나는 배가 아픈 것쯤은 무시하고 지냈다. 그 당시 일의 특성상 식사는 점심 이후로는 굶어야 했고, 동시에 명료한 정신을 유지해야 했기에 별다방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샷추가한 벤티사이즈로 매일 두세개를 마셨다. 배가 아픈 초반에는 신기했다. 왜냐면 꼭 오후 3시 전후로 배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 몸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면 수시로 또는 식사 후로 아플거라 믿었기에 특정 시간에 아픈 것은 왜일까 나조차 궁금했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일주일이 반복되었고 빈도와 통증의 강도는 점점 세어져 갔다. 처음에 내과에 들렀다.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사흘동안 믿음을 가지고 약을 먹었다. 전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다 먹고 재처방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일주일이 또 흘렀다. 계속 유사한 시간대에 아파서 이번에는 한의원에 갔다. 허혈이라고 했다. '그게 뭐지' 싶었다. 겨울이었기에 몸이 차가워져서 그렇다고 했다. 납득이 되었다. 저녁 끼니를 거르고 산지 꽤 되었으니까. 뜬끈한 밥을 채우지 않은 몸은 언젠 공허한 느낌이었으니까. 한약을 처방받았다. 마실 때마다 몸이 따스워지는 상상을 하며 한약을 역시 공복에 챙겨먹었다.

나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통증에조차 신뢰를 보내고 있던 어느날 사무실 복사기 앞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그 앞에서 배가 너무 아파 서있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아픈 것 같지 않은데 너무 아팠다. 결국 통증을 느낀지 거의 한달 가까이 되어서야 큰 병을 들렀다. 내가 아픔의 정도에 대해 그럭저럭 설명했기에 위염정도로 약을 처방하려던 의사가 이렇게 긴 시간 아픈 것은 이상하다며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난다. 갸우뚱하던 의사가 올레를 외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드디어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득의양양하게 내시경 화면을 보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내 위를 보았던 그 경험이.

내 위 벽은 미처 완공할 수 없어 마감을 못하고 끝내버린 어느 가건물의 천정과 똑 닮아 있었다.

얼기설기 얽힌 전선들처럼 핏줄이 보이는 위벽은 곧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나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의사의 설명도 그러했다. 피부를 자꾸 긁어서 발개지면 염증이고 더 긁어서 벗겨지면 궤양이라고.

나는 구멍이 뚫리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런데 왜 병원에 일찍 오지 않았냐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그 화면과 나의 통증의 간극이 아득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는데요...?'


몸은 나를 한숨을 쉬며 지켜보는 어떤 존재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피로를 억지로 밀어내며 일어날 때 내 몸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에휴, 그래 일어나줄게.'

빈 속에 술을 들이킬 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적당히 좀 해라, 그래도 일단 공장 돌릴게.'

슬퍼서 울다가 정신을 좀 차릴 때 그렇게 말한다.

'뭐 맛있는 것 좀 먹을래?'


몸에 수포가 생긴지도 모르는 상태로 달릴 때도 몸은 계속 내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뜨겁고 너무 덥고 너무 지치잖아.

위에 구멍이 생기는지도 모르고 일할 때도 몸은 계속 내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들고 너무 위험하잖아.

그리고 그때마다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달리고, 커피를 들이붓고, 잠을 줄이고, 통증을 무시하는 내게 몸은 말했을 것이다.


'에휴, 그래 한번 계속 해볼게'


중학생 시절 즈음, 누구나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자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죽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죽으면 다 끝나지 않나라는 생각에 강렬하게 끌렸던 어느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음을 택해 어떤 행동이든 한 그 순간에도 내 심장과 피와 근육과 모든 기능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텐데 라는. 그 순간 무언가 몸과 생각이 분리되는 동시에 무엇보다 강렬한 나의 보호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생각이 나를 죽이려 하고 몸이 나를 살리려 한다면 나는 몸의 그 처절한 희생을 유의미하게 바라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몸의 수포를 일으켜서라도 끝까지 달리게 해 준 내 몸의 말없는 희생에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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