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먹었던 밥들

밥으로 기억되는 시간들

by ksoo


그냥 예전 일들을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실마리가 없다. 막연하다... 이번에는 밥을 먹었던 장면을 생각해 본다. 외식이든 집 밥이든. 그제야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언젠가 교외에 갔다. 아마 엄마가 팔을 잘못짚으셔서 뼈가 살짝 부려졌던 것 같다. 마침 들어 둔 상해 보험료로 90만 원 가까이를 받으셨다.


그 돈으로 아버지, 나, 엄마 모두 한약을 지어먹자고 교외 한약방으로 갔었나 보다. 뭔가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그리고 도착했더니 점심시간이어서 시간이 안 맞았나. 기다려야 했고 식당을 찾아보니 근처에 된장국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이 있어서 먹으러 갔다. 이때가 2006년쯤 될까. 근데 그게 벌써 14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당신한테 돈을 쓰지 않고 그런 결정을 하게 우리는 또 내버려뒀다니...


아버지와 나는 또 염치없이 엄마가 아파서 받은 돈으로 군말 없이 보약을 지어먹고. 겨우 14년 전인데도 엄마는 그 정도 결정권은 가지고 계실 때였나 보다. 세월이 아쉽고 무섭다. 한 사람의 자주권을 참 많이도 앗아 간다.



그 된장국, 그 식당. 그 식당은 냄새가 났다. 고기 구워 먹고 찌든 냄새. 생각해 보면 청소를 좀 자주 했으면 그 정도로 나지 않았을 조금은 역한 찌든 고기 냄새. 비린내. 근데 그냥 먹었다. 시간이 일러서 먹을 만한 식당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일렀으면 오전이었을래나. 아마 번호표만 뽑고 기다렸나 보다. 언제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르니 멀리 갈 수는 없었고 그 식당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들어섰다. 그 식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기억은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뿌옇고 황톳빛 배경으로. 단지 그 한 장면이지만 부모님과 나의 한 연대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아련히. 엄마 팔 다친 보험금으로 아무 생각 없이 보약 지으러 간 부자, 그리고 엄마..


기억 속의 밥은 따뜻하고 아련한데 지금의 밥은 칼로리만 걱정하게 된다.

아침, 너무 오래전이다. 부엌과 큰 방이 통한 문이 있다. 옛날 집이다. 밥상이 들어온다. 엄마가 그러신다. 오늘부터 이제 다섯 살이다라고. 생일상인가 보다. 나는 강아지 수준의 수동적인 자세로 가만히 그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다섯 살... 아무 생각이 없이 그 정보만을 기억하면서... 옛 기억은 항상 뿌옇고 황톳빛 누르스름한 빛을 띤다. 내 다섯 살 생일상. 그럼 그 시기가 매우 구체적이 된다. 참 오래된 일이구나.


고3 아침에 식탁으로 나가면 엄마가 종종 해주시던 떡볶이. 물이 많고 손바닥 만한 동그란 오뎅이 크게 반쪽이 들어 있는, 다싯물 감칠맛이 좋아 밥에 비벼 먹던 그 물 떡볶이 아침밥. 고3쯤 되는 시기라서 그런가 이 기억은 해상도가 높고 컬러까지 선명히 떠오른다. 고3 아침 학교를 나가기 전의 낯선 느낌. 차가운 느낌.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세계로 나가기 전에 엄마가 차려주던 그 음식. 자주 나와서 왠지 엄마가 미안해 하는 것 같았지만 심지어 나도 아침에 또 떡볶이? 그랬지만 먹을 때마다 맛있었던 그 물 떡볶이.


밥상, 많은 식당들, 훨씬 수가 많았을 집에서 먹은 밥상들에 비하면 식당에서 먹었던 기억의 횟수는 상대적으로 많다. 역시 외식은 우리에게 항상 약간의 흥분을 선사하는 건가 보다. 그립다 말할 수 있을까. 아련하다 말할 수 있을까. 아프다 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제 계시지 않고 어머니는 연세가 너무 들어버려서 생각만 해도 슬프기 때문에. 밥을 함께 먹던 활동적인 부모님과의 식사를 생각하면 현재와 너무 큰 격차가 느껴져서 그 쓸쓸함을 떨쳐낼 수 없다. 의기소침해지고 침울해진다.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갔던 초밥집에 갔다. 둘이서 먹었다. 그때 셋이서 먹었던 그 초밥집의 흥겨움은 없었다. 대신 옆 테이블? 옆 칸막이의 침해로 인한 불편함이 있었고 문 옆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고. 심지어 음식도 초밥만 시켜서 그런지 맛도 없었다. 역시 슬프다.


다시 엄마와 마지막으로 즐거운 외식을 해보려고 한다. 둘이서도 충분히 좋은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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