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족들 - 이 감옥에서 저 감옥으로

9 화

by ksoo

이후에도 왈가왈부를 했지만 설득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타난 누나들은 심지어는 나도 믿지 못한다고 혼쭐이 나야된다고 협박을 했다. 이제 가족인지 조직폭력배인지... 그나마 나는 엄마의 모성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엄마에게도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핵심은 오로지 돈이었다.


저녁이 되어서 나왔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김사장이었다. 반가웠다.

"어떻게 됐어요?, 다친데는 없어요?"

"너네 가족들은 잔인하구나. 그래도... 최소한 진실은 보게 됐다. 나는 미련이 없다. 더 이상 자네를 괴롭히지 않을테니 잘 사시게"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약간 권태로워질만도 했다. 아저씨는 늘 밖으로 돌아다녔으니까.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아저씨에게 늘 그 목말랐던 남들의 인정. 투박했기 때문에 그 인정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줄 모르고 그저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아둥바둥했다. 아주머니는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부인은 또한 남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애쓰지 않나. 그게 마치 나의 사회적 성공인양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 빨랫줄 같은 긴장의 끈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다. 아주머니가 나이 50을 넘어가면서 어느 날 허리가 아픈데도 아저씨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이것저것 밥을 차리다가 그리고 아저씨는 심지어 그 날도 자기 맘에 안드는 점을 스스럼 없이 말하는 날. 아주머니의 내면에서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듯한 우지끈하고 뭔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다음날부터 아주머니는 자기 인생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질없는 감사함도 모르는 남편, 아들 정도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큰 구멍만 보이게 됐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그동안 준비한게 없었다. 그 때 동네에서 아는 한 아주머니가 자기보고 어딘가를 놀러가자는 제안을 하게 됐다. 그저 등산 모임이라고 말이다.

산에 가니 좋았다. 가슴도 탁 트이고 자연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속 시원하게 느껴졌다. 바랄 것이 없었다. 내 안의 아무것도 없던 것이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감이 생기고 왠지 모를 의욕이 생겨났고 활력이 도는 것만 같았다. 그 모임에서 보았던 한 남자 회원에게도 스스럼없이 말도 걸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모르는 남자한테는 웬만하면 말 걸어도 잘 응대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내 인생의 새로운 면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도 좀 자유로와지고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잡은 것 같은...

이후로 등산 모임을 종종 하게 되고 끝나고 뒤풀이도 이어졌다. 술이 들어가면 실수를 하게 된다. 악마에게 유혹당한 것처럼 순식간에 당하게 된다. 그 남자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돈이 필요했다. 너무 뻔한 결말이다. 아주머니는 돈을 빌려줬다. 그저 그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졌을 뿐이다. 사랑인지 동정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자기의 울타리 안에 상대가 들어와 버렸고 늘 그렇듯이 다시 자기의 감옥 안에 갇히고 만 것이다. 남편이라는 벽에서 탈출한 듯 보였지만 스스로 다른 벽으로 자기를 가둬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더 최악의 벽으로. 점점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사채를 쓰고. 협박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그 남자는 더 이상 연락이 잘 되지 않게 되고. 마치 저녁을 차리다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다가 다시 한번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한 번은 실수이지만 두 번은 자기 잘못이라고 했나. 아주머니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헤쳐나가기엔 힘이 없었고,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진 좌절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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