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족들 -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10 화

by ksoo

돈과 성공밖에 모르는 남편,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그 남자, 주변엔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사채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고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가 없는 법. 구원의 손길이 있었으니 처음에 이 등산 모임을 소개했던 다른 아주머니가 이번엔 또 다른 이상한 길을 안내했다. 해외 도피성 취업. 아주머니는 그 길로 대충 짐을 싸고 자살을 가장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모험의 길이 아주머니를 기다라고 있을지 몰라도 이 와중에 아저씨는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실종자의 남편이 되어 버렸다.


그 황망함은 곧 분노로 이어졌고 범인 찾기에 골몰하게 된 아저씨는 그 백사장 위의 바늘을 뒤지다가 나를 찾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 배경을 알게 된 아저씨는 가장 원초적인 사실 하나에 이성을 찾은 것 같다. 아주머니와 그 아저씨의 만남. 그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대단했던 분노는 찬물을 끼얹은 듯 냉정을 찾게 되었다.


"부질없다. 다 부질없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돌고 도는 인간의 욕구 속에서 우리가 뭘 바랄 것인가. 오늘도 난 출근을 한다. 그 욕구가 만들어 놓은 저 거대한 도시의 밀림 속으로 말이다. 모험 같은 이 추격전이 끝났지만 아저씨에게는 그리고 중국이든 어디든 떠난 아주머니의 모험은 한창 진행 중일 것이다. 또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것이고 세상의 복잡한 계략에 또 패배하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판을 벌이는 게 인간이니까.


우리 가족은 결국 일망타진당했다. 난 영구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내 유년기, 청소년기는 어어질 수 없는 절벽으로 가로막힌 느낌이다. 지금과 이어질 수 없는 전혀 다른 나의 가족을 보고 있다. 아저씨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한 그 아내와 지금은 마치 티비에나 나올법한 불량 주부가 되어버린 아주머니와의 그 먼 간극을 바라보면 말이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니 때론 그 보금자리가 가장 높은 절벽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그 보금자리에 균열이 생겨 평생 그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떨어져서 다쳐도 부러진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아저씨도 나도 그 아주머니도. 우리 가족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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