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
새벽 1시다. 담배 한 대를 물고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전화를 해본다. 전화를 받는다. 엄마다.
"엄마, 아들로서 30년을 넘게 커왔는데 이게 도대체 뭐야?"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니 갈 길을 가라. 니 인생은 이제부터 잘 지내면 된다."
"그러고도 싶지만 가족들한테 피해 입은 저 사람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도 편치 않다. 그동안 내가 누린 것들이 다 그런 돈이었다는게..."
"그런거 아니다. 니는 이제 니 갈 길을 들어섰으니 니 갈 길을 가라."
"내일 그럼 그 사람이랑 매산동 골목길에 와서 다시 와서 연락해라."
"아니 어떡할라고.. 그 사람은 지금 엄마랑 누나들 다 잡아넣으려고 아니 아예 자기 식대로 해치려고 눈이 벌건데..."
"내가 말해 본다. 그 인간도 원하는게 있을기다. 와서 연락해라. 그리고 이 일이 해결되면 니는 다시 서울로 가는기다. "
뚝 끊어졌다. 와... 이제는 엄마가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예전의 엄마는 이런 엄마였다. 종종 바쁘기도 했지만 나에게 밥을 해주는 엄마. 살림말고는 딱히 신경 쓰는 일이 없을 것 같은 엄마, 그냥 엄마였다. 지금은 사업가처럼 느껴진다. 더 믿기지 않는 건 그런 엄마가 이제 익숙하다는 거다. 불과 하루 이틀 만이다. 인간의 인지라는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적과의 동업 이틀째다. 다시 매산동으로 간다. 그리곤 전화를 한다. 첫번째 통화는 실패다. 두번째 통화만에 받았다. 엄마다.
"거기 매산집 골목으로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어라. 만나서 이야기 하자. 지난 번처럼 와서 전화를 해라. 아니다. 10시까지 오도록 해라."
김사장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한 몸처럼 붙어 있으니 두고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 같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뭐 얼굴 보고 이야기라도 하면 이 사람도 뭔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매산 골목이다. 예전에 자주 먹던 그 떡볶이집. 오랜 옛날이 생각난다. 그 젊었던 우리 가족. 활기가 넘치고 희망이 있었던 건강했던 가족. 지금은 어두움이 내리고 쇠락해가는 우리 가족과는 달리 말이다.
갑자기 누군가 들이닥치고 옆에 있던 김사장을 덮쳤다. 건장한 청년들이 순식간에 우리를 제압했다. 그리곤 멀리 있지 않은 사무실도 아니고 집도 아닌 애매한 공간으로 우리를 쑤셔 넣었다. 김사장을 푸대 같은 걸로 덮어 씌우고 매타작이 시작됐다. 나는 그만 하라고 소리쳤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엄마를 만났다. 거기서...
나는 예전의 가족으로 억지로라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나. 우리 가족은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버렸는데 말이다. 헛된 희망을 버리고 싶었지만 예전의 기억들은 그 희망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설득했다.
"그 사람 다치게 하면 더 죄만 커지니 그만 두세요"
"너는 너무 순진해서 이 바닥을 모른다. 그 인간이 계속 그렇게 설치면 니 인생도 끝장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려고 그러세요. 죄가를 치르고 차라리 새출발을 해요."
""일이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저 사람은 우리가 처리할테니 니는 니 길을 가라."
"그거야말로 그렇게 쉬운게 아니에요. 저 사람은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죽이지 않는한"
"그렇다고 죽일거에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순간 엄마의 모르는 면을 얼핏 본 것 같았다. 포기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상황이 아닌건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게 펼쳐져 있었던 것일까.
내 손에 봉투가 쥐어졌다. 돈이겠지.
"그거 가지고 직장으로 돌아가라. 저 인간 때문에 행여 문제가 생기면 그 돈으로라도 버티면서 니가 하고 싶은 거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