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으로 개고생 하고 뿌듯해 하기
섬백패킹을 하고 싶었다. 백패킹에 입문하고는 오토캠핑에서 기변을 좀 했다. 원래 비싼 거는 못 사는 성격이라 급한 것만 바꿨다. 매트리스, 소형 버너, 랜턴, 침낭 라이너 추가 - 추울까 봐 등등. 이전에도 장비 테스트 한다고 급하게 가느라 그냥 캠핑장을 갔었다. 평일에 갔더니 산캠핑장인데 정말 아무도 없었다. 사장님도 없었다. 통화로 이야기하고 이체하고 밤을 보내다 새벽 3시에 춥고 무서워서 그냥 나왔다. 일단 장비는 괜찮았다. 영하 5도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짐도 싸보았으니 할 수 있다는 건 확인.
섬백패킹의 장점은 취사 및 불을 피울 수 있다는 거다. 불을 피우는 건 사실 장소에 따라서 안 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이번에도 급하게 나왔다. 게으른 성격은 어쩔 수 없다. 이러다가 못 나올 것 같아서 나왔다. 아 다 챙겼는데 텐트를 안 챙겼다. 밑에 달고 나오는 텐트를 빼먹고 왔다. 잠시 생각했다. 이러면 버스를 놓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텐트 없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집으로. 아 16kg 배낭은 왜 이리 무거운가. 운동할 때는 가볍게 드는 편인 나도 40kg 이상도 드는데 이상하게 배낭은 너무 무겁다. 다시 나와서 할 수 없이 택시를 탄다. 인천여객터미널까지.
드디어 도착,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예약한 경우 표가 취소되지 않는다. 현장 발권도 가능하나 역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 듯하다. 이후는 마감된다고 한다. 출발한다. 쾌속선이라 아늑하고 빠르다. 급피곤 해져서 바다 풍경도 못 보고 잤다.
도착해서 바로 버스가 있었다. 장을 보려고 했지만 버스가 배시간에 맞추기 때문에 마지막 배라 마지막 버스란다. 그냥 부랴부랴 탔다. 출발. 서포리 해변으로. 캠핑을 할 장소다.
시골 버스 - 기사님도 승객분들도 대충 서로 알고 계시는 듯 대화를 하시기도 한다.
서포리에 내렸다. 깨끗한 해변이다. 와 근데 이번에도 아무도 없다. 오늘 밤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친구들 단톡방에 알렸더니 한 친구가 캠핑장에서 만난 귀신 이야기 유튜브를 올려줬다. 바로 삭제했는데 제목이 뇌리에 박혔다. 이런.
씨유가 있다고 들어서 먹을 거 사러 간다. 블로그에서 봤던 고양이가 실제로 그 포즈로 있었다. 와 신기. 첨엔 내가 사진에서 본 게 인형이었나 싶어서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다. 이거 진짜 고양이냐고. 너무 사진이랑 똑같은 포즈에 움직임이 없었다.
진짜 고양이라고 한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저렇게 거대하게 커버렸다고 한다. 그전에는 사고뭉치였단다. 동네 고양이들이랑 맨날 싸우고. 근데 지금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저렇게 비만이...
먹어야 살지. 상을 차려 본다. 남들 한다는 건 대충 샀다. 골제로 랜턴, 소토 버너, 짝퉁 경량 테이블 등. 라면에 밥 말아먹고 거기에 또 고기 넣어서 개밥처럼 해치웠다.
해가 진다. 시설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야생의 느낌은 좀 떨어지는 해변이다. 원래 캠핑장 돈을 10000원을 받는데 걷으러 오지도 않았다. 화장실도 폐쇄되어 있어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곧 밤이 되었다. 역시 고양이들이 온다.
밤이 되었다. 백패킹의 단점은 불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밤이 되면 할 일이 없다는 거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일단 진리 해변 선착장에 식당 등 대부분의 이용 가능한 시설들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나가야 된다. 아니면 배낭 메고 2시간 걸어야 된다. 기사님한테 전화를 해야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섬 버스 - 기사님 핸드폰 번호가 공개. 사생활 없다. 버스 시간이 45분 후쯤이었다. 텐트 철수 훈련 - 40분 내 다 정리하고 바깥 도로로 나가서 버스 기다리기 미션.
급하게 챙기고 늦을까 봐 부산을 떨었더니 땀이 났다. 마지막에 텐트는 완벽하게 접지 않으면 안 들어가서 대충 들고 나왔다. 다행히 버스가 조금 늦어서 5분의 여유가 있었다.
선착장으로 왔다. 아침을 추어탕으로 먹고 사장님 추천으로 밧지름 해변도 가보고 다시 돌아와서 카페도 가 본다.
다음 날이 좋았다. 밤새 고생하고 뒤척이고 친구가 보내 준 영상 제목 잊겠다고 애쓰고 혼자 그 고생을 하고 맞이하는 아침, 사람, 문명이 상대적으로 귀하게 느껴졌다.
캠핑을 하는 건 이런 반전 때문인 것 같다. 가서 고생하고 평소에 쓰지 않던 일상의 정신적 육체적 근육을 쓰고. 특히 혼자 가면 처음에는 후회한다. 그리고 적응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일상으로 복귀하면 급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신과 육체의 근육들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태풍이 바다, 강을 휘젓고 그 부유물들로 인해 생태계가 활성화되게 하듯이 캠핑도 그런 점이 있다.
첫날 밤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그랬다. 한동안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근데 다녀오고 나선 다음에는 어떻게 보완을 해서 가볼까 하고 리스트를 적고 장비 검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