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의 꿈

자존심 버리기

by ksoo

자존심만 남았다. 그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다. 이런 말도 있다. 그리고 장어의 꿈이라는 노래에서 깎고 깎다 보니 작은 자존심 하나만 남았다는 가사가 나온다.


에고는 힘이 세다. - 버드맨이라는 영화에서 왕년에 좀 날린 영화배우가 그 자존심을 접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자존심이라는 괴물에 잡혀 먹고살아야 하는 걸까. 괴물 -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깎고 깎아 자존심하나가 남았다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 얇은 몸의 장어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계 대부분은 이 자아, 에고, 자존심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때 인기 있었던 몰입이라는 시리즈의 책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에게 자아란 개념은 대략 3000년 정도 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고. 물론 이건 작가의 의견 혹은 작가가 인용한 내용이기는 하다. 과학적으로 완전한 사실은 아닐 것이다. 또 이런 내용도 나온다. 이런 자아를 아예 없애려고 하는 종교도 있다고. - 아마도 불교를 염두에 둔 발언인 것 같다.


이런 왈가왈부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자아는 더욱더 중요한 건 사실이다. 요즘 우리를 둘러싼 인터넷 사업의 상당 부분이 자아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SNS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허영, 과시, 그리고 관계의 통로로 SNS를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면 굳이 이 공간에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자아는 우리의 뿌리를 이루고 있고 또한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게 문제다. 이런 일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나보다 어리거나 경력이 낮거나 그런 동료가 왠지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가서 한 마디하고 잡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할까?

내가 그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저러는 건가?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가만히 있자니 자존심 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은 그 동료가 아니라 무시당하고 있는 내 자존심이다. 사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나한테 직접적으로 위해가 가해지는 건 없다. 기분 나쁘다고 해서 어디가 다치거나 그럴 일은 없다. 다만 기분이 나쁠 뿐 - 이 기분 나쁘다는 것의 핵심이 결국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서로 싸워서 피 튀기고 상처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런 원초적인 싸움은 요즈음엔 없다. 단지 이 싸움에서 받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이를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는 남들보다 우수해지고 싶어 한다. 더 뛰어나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더 이상 자아에 먹이를 주지 않으려고 해 보자. 좀 더 높은 목표의 행로에 발을 들여 보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종교, 명상, 운동을 통한 건강이라는 자산 쌓기

취미 활동을 통한 정신적 자산 쌓기

구도적인 삶, 타인을 배려하기, 공동체에 대한 공헌


우리의 자아를 좀 더 건강하고 더 높은 목표로 돌려 보자. 한 걸음을 떼서 자아라는 진창에서 옆으로 옮겨 보자. 매일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멀찍이 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달라이라마께서 그러셨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변했다고 하면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시간을 들여서 변해서 천천히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믿을 것이라고.


언젠가는 모든 일들이 연꽃잎에서 먼지가 흘러내리고 마는 그런 마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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