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라는 검을 꺼내기
살다 보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났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쾅쾅쾅 두드린다.
김영식 씨!!!
나가봤다.
아니 왜 문 앞에 이런 걸 버리세요?
내가 버린 게 아니다.
아니 여기에 호수가 적혀 있잖아요.
아 뭐지 내가 아마도 재활용 폐지함에 버린 주소가 적힌 택배 박스 일부가 쓰레기 사이에 버젓이 놓여 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이렇게 넣어서 제가 버린 거 아니에요.
그냥 문 앞에 던져두고 간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토요일 아침부터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전. 팀장이 조용히 부른다. 이번에 프로젝트 관련 내가 잘못한 걸로 판단이 돼서 징계 절차가 내려진다고 한다. 방금 긴급회의에서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내 프로젝트가 아니다. 나는 도움을 달라고 해서 잠시 도와줬을 뿐이다. 근데 이 프로젝트가 좀 망하긴 했다. 이걸 내 탓이라고 하다니. 그때 그 프로젝트에 잠시 들어갔을 때 한 명이 적의에 찬 눈빛을 보내서 나도 좀 퉁명스럽게 대했었는데 그 놈인가 보다. 그쪽 팀장한테 전화를 했다. 그 팀 전체가 누가 잘못을 했나고 했을 때 애매하게 둘러서 내 탓 같다는 말을 했다는 거다. 정확히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저 그런 추정을 할 뿐. 나는 가서 해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더 항의하면 더 이상한 놈이 될 판국이다.
집으로 왔다. 분이 삭여 지지 않는다.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 편의점 안의 볼록 거울로 보니 수상한 한 인물이 보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도둑 잡아라 하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주인이 나도 한 패가 아니냐며 내 옷을 움켜쥔다.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됐다. 주머니에서 훔친 물건이 나왔다. 나는 내가 넣은 게 아니다고 항변했지만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사소한 혐의라 다음날 약식 재판을 받고 나왔다. 회사에는 병가를 냈다.
집으로 왔다. 이번에는 고향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괜한 말을 해서 집안에 분란이 생겼다는 거다. 나는 그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새벽 1시지만 달리기를 하러 밖에 나왔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끊임없이 억울한 일들이 생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 생각난다. 한 때 회사에서 나보다 한 열 살은 어린 친구가 너무 예의 없이 굴어서 한 번 잡아서 대놓고 날을 세운 적이 있다.
지나가면 인사를 해야 하지 않아요?
아 제가 잘 안 보여서요. (안 보일리 없다. 변명이다)
아 그래요? 뭐 악의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죠?
....
그래요. 가요.
뭐 저런 말을 시작한 것 자체가 꼰대 대화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뭐 악의를 가졌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랑은 종종 싸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뒷담화는 분명히 내가 하지 않았다. 누나들이랑 커서는 종종 갈등이 생겼다. 자기네들이 싸우다 한 말을 듣고 내가 나서서 중재하면서 기분 나쁘게 말한 적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어린 동생 주제에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분명히 나는 하지 않았다.
살다 살다 내가 물건을 훔친 적이 있나. 아... 일곱 살, 아니면 여섯 살? 그때 동네 가게에서 자두가 보인다. 내 머리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자두만 보일 뿐. 그 자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있었다. 주변에 애들이 많아서 번잡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고 가게 할머니가 급하게 이상하게 느끼셨는지 물어보셨다.
영식아 돈 냈지?
네...
여섯 살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네라고 답을 했다. 나름 평소에 정직한 아이였는지 할머니는 믿어 주셨다. 가게 할머니를 고양이 할머니라고 불리었다. 고양이를 항상 키우셔서. 어릴 때도 할머니고 나이 많은 누나들도 자기 어릴 때도 할머니였다고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물건을 훔쳐서 미안하단 생각보다 어렸을 때는 참 아무 생각이 없다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느낌으로 기억한다.
여섯 살 때 잘못까지 생각을 해 보는 지경이다.
그래도 프로젝트 징계, 절도, 쓰레기 투척...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또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또 아니지 않은가? 옆 팀의 김재현 대리는 정말 싫어도 그런 내색 없이 참 잘 참고 지내던데 그 정도 급은 내가 아니지 않나. 이러면서 자책을 해본다. 좀 더 참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 하지만 이 잘못들은 진짜 내 잘못이 아닌데...
아무라 생각해 봐도 답이 없다.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본다. 인내라는 칼이다.
인생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엉킨 실타래 같은 일들을 인내라는 칼로 탁 쳐내면서 캄캄한 하늘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