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패하는가 #1
내 집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집을 지을 땅을 가져야 하고, 그 땅 위에 구현될 집을 구상할 건축가를 만나야 하고, 관할관청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설계대로 지을 엔지니어를 섭외해야 하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 각 개별 단계에서 어느 하나라도 예상을 빗나간다면 제대로 된 집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냥 집의 형태를 갖춘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건축주의 입장에서 그 많은 공을 들여 겉모양만 그럴싸한 집을 갖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불행이다.
그러다보니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도 수월찮게 접하게 된다.
우리가 평생 가질 수 있는 집이 몇 채나 될까.
세 채는 지어봐야 집을 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아마 대부분은 평생을 모은 목돈이나 아니면 큰 부채를 감당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로 한 채 정도 갖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큰 용기와 부담이 수반된다. 이렇게 단 한번 뿐인 기회를 너무 쉽게 허투루 사용한다는 것은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그렇다면 왜 그 집 모양을 갖춘, 그것이 나를 위한 집인지 아니면 집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의 집인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지는가.
"당신이 살 집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나요?"
절대 그렇지 못하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속이고 있다. 주택의 규모가 작아서 그 모습이 또렷이 보여 진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평생 그곳에서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 집은 내가 가장 확실히 잘 알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쉽게 다뤄진다. 건축주를 만나보고 그들의 그동안의 삶을 오랫동안 들어보면 그들은 자신이 원했던 집을 가졌다기 보다는 내가 앞으로 맞춰가야 할 부담스럽고 불편한 집을 획득한 경우가 많다. 앞으로 그들은 그 정체모를 것들이 퍼붓게 될 폭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옛날 티비에서 이런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이 둘은 견제 세력이고 아이러니 하게도 협력관계다. 90년대 말 의약계 대란 이후 그 역할이 한쪽으로 치우지는 경향이 발생하였지만, 오남용을 막고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는 취지였다.
이러한 견제와 협력의 관계가 건축에서는 설계와 시공 분야다. 설계는 건축가가 그리고 시공은 엔지니어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관계도 경계를 넘나들고 있어 흔들리고 있지만 디자인과 기술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선순환의 협력 시스템이다. 이 관계만 이해하여도 건축주, 집을 지을 당신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정작 건축주들은 집을 짓기 위해 숨어있는 건축가보다는 옆 집 혹은 그 건너 옆 집, 가까이에 있는 엔지니어인 시공사를 찾아 설계를 의뢰한다. 아무리 울부짓어도 들은척 만척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어긋난 단추는 예상대로 어긋난 채로 마무리 된다.
첫 단추, 당신의 집은 어떠한 경우라도 건축가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 숨어있는 건축가들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