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패하는가 #2
숨어 있는 건축가를 찾으셨나요?
일반 건축주들이 건축가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참 서먹한 관계다.
「분명 내가 의뢰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설계를 하지만 언제나 그들 앞에서는 뭔가 배우러 온 학생처럼 긴장을 하게 된다. 섣부른 질문에 괜한 트집이 잡히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종일관 그들의 얘기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지만 뭐라 덧붙일 얘기도 없고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형이나 도면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많은 건축주들이 겪는 일이라 생각된다. 내 집이 완공될 때까지, 그리고 비로소 집이 내 눈앞에 놓이고 나서야 ‘아. 이런 집 이었구나’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 건축주의 의도가 제대로 그 집에 스며들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건축가를 만난다고 해도 이런 경우라면 별 소득이 없다.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건축가와 친구가 되세요.
건축가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어지간히 불편한 일이 아닐수 없다. 건축가를 만날때마다 많은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 마치 내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것처럼 훌훌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다면 건축가는 당신이 원하는 집을 그려낼 수 없다.
히가시야마 카이이(東山魁夷)는 두명의 건축가 친구가 있었다. 요시무라 준조(吉村順三)와 다니구치 요시노(谷口吉郎)다. 요시무라 준조는 히가시야마가 반평생 머물 집을 설계하였고, 다니구치 요시노의 아들인 다니구치 요시오는 그의 작업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설계하였다.
설계의 과정은 어렵다. 그리고 중요하고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많은 경우의 수를 대입하고 수많은 시도 끝에 완성되어 진다. 하룻 밤새 결과를 얻을 것이란 기대는 애당초 헛되다. 이런 설계의 과정 중 건축가는 건축주, 클라이언트를 수차례 만나고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면서 집을 다듬어 간다. 불편한 자리여도 올바르고 건강한 내 집을 갖는 가장 정확한 과정이다.
건축가는 문제은행식의 기존에 만들어 놓은 많은 평면이나 입면으로 이건 몇평형이고 저건 몇평형이라는 식의 제안을 하지 않는다. 물론 참고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다른 시도를 제안하게 되므로 설계과정에서 건축주의 참여는 필수다.
이런 과정에서 건축가의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고, 요구했던 것과 다르게 보여 진다면 몇 번이고 되물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 두, 세가지 대안에서 각각의 장단점으로 인해 결정하지 못하고 건축주의 결정을 기다릴 때가 많다. 건축가의 선택장애에 종지부를 찍어주어야 한다.
건축설계비용이 의외로 적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좀 더 싸고 좋은 곳을 찾아 헤매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싸고 좋다는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발품이 한 푼을 아낀다는 맹목적 생각에 허송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설계는 기성제품처럼 만들어 놓고 파는 제품이 아니다.
세상엔 어느 구석에도 싸고 좋은 건 없다. 설계도 마찬가지다. 종이 위에 프린터로 새겨진 도면들이 뭐가 그리 비싼가 싶지만, 그 한장의 종이, 그 종이 위에 수놓여 있는 도면을 생산하는데는 많은 시간 공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도면이 공사비를 절약하는 길이고, 어쩌면 발생할지 모르는 분쟁의 실타래를 풀어줄 열쇠가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설계비용을 아끼려다 낭패를 겪는다.
공사를 하면서 벌어질 수많은 시련을 건축가는 방지하면서 가치를 창조해 내고 있다면 결코 건축가들이 제시하는 비용이 많다고 여겨지지는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깨닫는 것은 아마도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간 즈음 일 것이다.
건축가에게 그러한 비용을 지불하셨다면, 서두에 언급한 건축가와 대화에 문제가 있다면, 이제는 몇 번이고 건축가에게 내 집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나의 권리이니 정당히 요구하여야 한다.
건축가에게 요구할 준비가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