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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14. 2018

일본건축기행 1-1

동경(도쿄 Tokyo, 東京)-1

[ 1 일차 ] _ 기쇼 구로가와(黒川紀章) vs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2017년 12월 13일, 서울은 영하 10를 하외하는 기온이 연일 계속되면서 얼어 있었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서둘러 저가 항공에 몸을 싣고 동경으로 향했다. 가깝고도 멀다는 또 다른 세상에서 1박2일 짧은 기행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처음이다. 그래서 먼나라 라고 칭하는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불과 2시간도 걸리는 않는 거리지만 그동안 왜 이렇게 먼 곳이었을까.

나리타국제공항(成田国際空港)에서 리무진 버스로 신주쿠(新宿駅)로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롯본기(六本木) 근처 노기자카역(乃木坂駅)에 내렸다. 노기자카역에서 국립신미술관(国立新美術館)은 지척이다. 그 곳은 웬만한 일반인도 알만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전시 종료를 5일 앞두고 있었다.


평일 이른 시간 한국을 떠나 타국의 수도에 위치한 건축가의 전시를 아침을 거르며 보러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한가롭게 밍기적 거리다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보면 될 것을...


(좌) 입장당시 대기모습 / (우) 관람후 대기모습

그래도 됐을까. 하마터면 긴 줄에 지쳐 전시 관람을 보기전 이미 지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일본 내 상징성도 있었겠지만, 일반 관람객들의 건축에 대한 문화적 인식과 관심을 저 긴 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국립신미술관의 내부와 외부


전시에 앞서 국립신미술관은 단게 겐조의 제자였던 기쇼 구로카와(黒川紀章, Kurogawa Kisho,1934-2007)의 작품이다. 1960년대 메타볼리즘(Metabolism)의 주축이었던 구로카와는 6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기와 같이한 건축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1960년대 일본건축은 세계로 향한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동양적 사상을 기조로 하며, 건축의 변화를 꾀하던 메타볼리즘의 선언자들 중 한명인 '기쇼 구로카와'와 1976년 스미요시 주택을 선보인 '안도 다다오'(당시35세)는 그러한 움직임에 고무되고 희망을 보고 있었으나 불과 10여년이란 기간을 기점으로 쇠퇴해 가는 메타볼리즘을 바라보는 시점에 다다라서는 조금 달랐던것 같다.


"그들의 주장과 방법은 1960년대 경제 급성장의 한가운데에 있던 일본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여 이 시기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지향한 것은 질서였던 변화가 낳는 예정조화적 세계였다. 하지만 그 논리는 얄궂게도 그 후의 일본에서 나타나듯이 도시 스톡(stock)의 축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안정된 도시 공간의 실현을 방해하는 스크랩 앤드 빌드 지향으로 바뀌어 읽혔다. 메타볼리즘은 지나친 기술지상주의나 산업자본주의의 표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단일한 논리에 의해서 제어하고자 한 발상 자체가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리라. 1970년대의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마지막으로 그 흐름은 점차 사라져간다. 하지만 1960년대 당시 그들이 그려낸 미래의 건축 및 도시의 모습은 건축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부추기고 고무시키기에 충분한 구상력과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다." 「연전연패(連戰連敗) p12~13」 <중략>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결실을 맺기까지 메타볼리즘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진보주의는 압도적인 힘으로 건축계를 석권해 나갔다. 그러나 메타볼리스트들이 화려한 미래를 노해하는 한편에서, 시대를 지배하는 근대 논리에 대한 반감이 싹트고 있었다. 근대의, 그 전부를 생각대로 계획할 수 있다고 하는 논리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1965년에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논문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가 발표되었다. 이것은 메타볼리즘과는 정반대의 주장이다. 즉, 도시에서 변화란 결코 질서 있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연이 겹치듯이 복잡하고 난잡한 상태로 있는 것이 도시이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도시 이해이다. 당시 내가 그 사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연전연패(連戰連敗) p18~19」


물론 이글은 안도다다오가 30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정리된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지난 60년대가 어떻게 되었던, 그들은 한 곳에서 다시 만나 일본의 현대 건축이 되고 있다.


기쇼 구로카와는 정치에도 관심을 가졌다. 보수 논객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신당을 창당하고 대표가 되기도 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지만 2007년 도쿄 도지사 선거, 참의원 선거에 모두 낙선했다. 중의원 선거를 출마하려 했지만 그해 10월 사망함으로 인해 모든 것이 좌절됐다. 


(좌) 기쇼 구로카와 (우) 안도 다다오 / 그들은 메타볼리즘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것일까


다시 전시를 보자.

안도 다다오의 전시다. 이번 전시는 국립신미술관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1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점에 미술관 설계자인 기쇼 구로카와가 아닌 안도 다다오의 전시는 어떤 의미일까. 구로카와 보다 안도가 좀 더 세계적인 건 분명하다지만 그렇다고 구로카와의 일본 건축에 끼친 영향력이 안도 보다 밑 돈다고 볼 수 없다.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이 기획의 의도가 조금은 궁금해진다.


안도 다다오 전시 포스터와 갤러리 안내도(한글)


안도 다다오의 작업에 대한 전시는 국내에서도 몇 차례있었다. 그때마다 전시를 보아왔었지만 안도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국외였고, 국내인 일본에서 하는 전시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보게 된다. 일본 방문이 처음이니 당연하지만, 전시 규모는 한국에서의 전시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압도적이었다.


6개의 섹션(원점,주거 / 빛 / 여백의 공간 / 장소 읽기 / 있는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든다 / 육성) 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주제는 endeavors 이다. 거의 90개 가까운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들이 소개되었고, 스케치와 모형, 도면, 영상 갖가지 미디어가 동원 되었다. endeavors.


프롤로그와 각 섹션 마다 전시에 기울인 노력은 최대한 이었다. 많은 걸 준비했고 많은 걸 보여주었다. 기억으로는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양으로 안도는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 전시 규모는 메모리에 약한 나에게는 너무나 강한 공격성을 지녔었다. 아쉬웠다. 오히려 그 방대한 양이 전시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이것도 endeavors라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대표작 중에 하나인 '빛의 교회'는 외부에 마련되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면 그 광경을 체험할 수 있었다.


외부 설치된 이미테이션 '빛의 교회'


*메탈볼리즘(Metabolism)
메타볼리즘은 물질대사(혹은 신진대사)의 의미로, 도시와 건축은 군화(群化)와 성장의 과정이고 도시의 변화, 순환 업데이트 시스템에 의한 건축의 창조를 도모한 것으로, 건축적 메가구조와 유기 생물학적 성장에 관한 아이디어를 융합하게 된다.
1960년 동경 월드 디자인 컨퍼런스(Tōkyō World Design Conference)에서기요노리 기쿠다케 키요노리(菊竹清訓),  기쇼 구로카와( 黒川紀章), 후미이코 마키(槇 文彦) 등이 포함된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그룹은 메타볼리즘 선언문 발행을 준비하였다. 해상도시(Ocean City), 스페이스 시티(Space City), 탑상형태(Towards Group Form), 물질과 인간(Material and Man)을 대상으로 한 4가지 에세이 였으며, 바다에 떠 다니는 광대한 도시, 유기적 성장을 통합할 수 있는 플러그인 캡슐타워 대한 디자인도 포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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