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도쿄 Tokyo, 東京)-2
내 눈에 쉽게 다가온 것은 안도의 전시가 아니었다. 나에게 더 흥미는 따로 있었다.
2017년 초 국내 개봉되었던 '너의 이름은'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전시 였다. 애니메이터며 감독인 신카이마코토는 실제의 장소를 회화적 기법으로 담아낸 배경과, 평범한 일상의 날씨와 사물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서정성이 돋보이게 매우 감성적인 스토리로 전개한다. 또한 '빛의 작가'라 불리울 만큼 화면에서 빛의 흐름과 표현이 집착에 가까울 만큼 강조된다.
전시는 작년 국내 DDP에서 전시되었던 픽사(Pixar)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과 너무 흡사할 정도로 유사한 면이 많았다. (한국과 일본의 기획자가 혹시 동일인 이었을까 싶을 정도의...)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듯 하다. 안도의 전시를 보러 와서 신카이 마코토 전시를 본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것인지. 아무튼 전자의 경우로 왔지만 후자의 경우로 마무리 지었다.
전시장을 나서고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동경국립신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다. 10주년는 상징성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설계자인 기쇼 구로카와(黒川紀章)가 아닌 안도다다오(安藤忠雄)를, 그리고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아닌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들은 과거보다 그들이 영향을 미칠 미래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동경 그리고 초행의 일본에서 독특한 점 하나 더 찾는다면, 위와 같은 전시관련한 스템프다. 원하면 개인이 준비한 종이에 스템프를 남겨도 좋다. 물론 포스터도 있고, 핸드폰으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저 아날로그적인 스템프가 인상적이다. 노트에 스템프를 찍고, 날짜(시간까지 기록했었으면 더 좋았겠다)와 장소, 당시 느낌등을 간략히 기록해 두는 것도 이 날을 상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안도 다다오의 전시보다 신카이마코토 전시가 훨씬 좋았던거 같다. 기록에 의하면.
이번 일정은 1박 2일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룰 수가 없다.
재빠르게 10여분 걸음을 재촉해 근처의 미드타운(Mid town) 히노키초 공원(檜町公園) 내에 있는 21-21 디자인 사이트(21_21 DESIGN SIGHT)에 도착했다. 21_21 디자인 사이트는 박물관이다. 안도 다다오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三宅 一生)의 작업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건축가에게는 정말 힘든 조합이다.
아마 디자인 과정에서 이세이와 안도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았을까 예상된다. 둘 모두 분야에서는 최고의 위치였고, 모던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표현은 달랐다. 어느 한쪽이 고집을 접지 않고서는 섣부르게 결론이 나지 않았을 듯 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물론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존한다.
과연 21_21 DESIGN SIGHT의 디자인은 이세이 미야케 작업일까?, 아니면 안도 다다오의 작업일까? 공동작업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 했을까?
둘 다 시대의 최고 디자이너 이고 그 둘이 만났으니 한번은 해 봄직한 의문이다. 21-21 디자인 사이트의 내 외부를 둘러보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이세이 미야케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재료와 디테일 그리고 공간적인 해결은 너무나 건축적인 것이어서 이세이가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외형에서, 경사진 지붕의 흐름과 형태는 이전에 보여줬던 안도의 건축적 성향이라 보기 어렵다. 입면에서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지붕 라인은 안도에게는 장식적인 요소 였을 것이다. 아마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을까. 눈 앞에서 처음 접했을 때 전혀 안도 스럽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에서 였다. 반면 이세이 미야케의 주름 작업을 보면 21-21 디자인 사이트의 디자인 컨셉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상상이다.
변할 수 있는 것이 건축이고, 건축가의 디자인이고, 스타일이다. 누가나 알고 있는 현대건축의 거장 들도 초기와 말기 디자인 성향을 보면 다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달라질 수 있지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시간에 순응하여 흐른다. 그 반대로 역행 하지는 않는다. 작업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고는. 조금은 지나친 상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