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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dolee May 06. 2018

아이폰 라이트닝 독을
허락하소서

가격은 6만 5천 원.


 요즘 같은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공포는 무엇일까?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스마트폰 배터리가 10% 밑으로 떨어질 때 은근한 공포감을 느낀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 그리고 스마트폰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내 손에 스마트폰이 없을 때를 상상하기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배터리가 없어서 음악을 듣지 못하거나, 카카오톡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 배터리가 없어서 마음을 졸여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 하니 이만큼 현실적인 공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배터리에 예민한 나는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늘 충전을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와 정반대인 사람도 많다. 내 주변만 봐도 우리 누나부터 친구들까지 배터리 잔량이 2%가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 이것이야말로 사바사(사람 by 사람)인 듯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아이폰은 밥을 먹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아이폰에서 울리는 알람을 끄고, 오른쪽 위로 시선을 돌려 배터리를 확인한다. 그리고 '100%' 완충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이불 밖을 나선다. 시험지에서도 그렇고, 아이폰에서도 그렇고 저 '100'이라는 숫자는 왠지 모를 기쁨과 안정감을 준다. 왠지 급하게 나가더라도 모든 것을 빼먹지 않고 다 챙긴 느낌, 뭐 그런 거다. 반대로 자기 전에 아이폰에 충전기를 꽂는 것을 까먹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을 때의 기분은 찝찝하기 그지없다. 마치 아이폰 배터리와 내 에너지가 동일시된 기분이다. 이런 게 진정한 물아일체일까?


충전기를_꽂지_않고_잔_사실을_알게_된_나.gif (GIPHY)


 자기 전까지 아이폰을 만지다가 충전기를 꽂고 자는 나에게 우리 엄마와 누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스마트폰 머리맡에 두지 마라. 몸에 안 좋다."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하여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수면 장애나 기억력 감퇴, 암, 무정자증 등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몇 년이나 아이폰을 머리맡에 두고 잤던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고, 항상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잤다. 이 정도면 안전불감증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안전불감증엔 역시 위기탈출 넘버원! (Daum 뉴스)


 하지만 이 녀석과 함께라면 왠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녀석의 이름은 '아이폰 라이트닝 독'인데, 이름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 녀석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아이폰'은 말 그대로 아이폰 전용 제품이라는 뜻이다. 아이폰 전용 제품인 이유는 뒤에 나오는 '라이트닝'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다. 라이트닝 커넥터는 애플이 아이폰 5부터 적용한 단자 규격으로, 애플의 행보를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애플 제품에만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독'은 거치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한 마디로 '충전 기능을 가진 아이폰 거치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널리고 널린 거치대 말고 굳이 이 녀석을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예뻐서요. (Apple 홈페이지)


 그저 애플 정품이라는 사실, 나에게는 그게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 가능하면 애플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사려고 노력한다. 내구성이 특별히 튼튼한 것도 아니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지만 확실한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내 새끼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예쁜 것만 입히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애플로부터 배웠다. 나는 항상 조금 비싸게 사더라도 저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편인데(내가 호갱이기도 한 이유), 다행인 건 저 신뢰가 깨진 적이 한 순간도 없다는 것. 아이폰 실리콘 케이스부터 아이패드 스마트 커버까지 내가 사용한 애플 정품 액세서리는 모두 만족스러웠다. 그렇기에 아이폰 라이트닝 독도 믿음이 간다. 마치 소개팅을 나갔는데, 그 사람 곁에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니 왠지 이 사람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 쟤가 딱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충전을 하며 이어폰 잭을 이용해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깨알 포인트다. (Apple 홈페이지)


 잠깐 눈을 감고 상상했다. 자기 직전, 내 아이폰을 라이트닝 독에 꽂고 꿈나라로 가는 모습을. 머리맡에 두고 자던 아이폰이 라이트닝 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전자파와 멀리하게 된다. 6만 5천 원을 주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달랑 저거 하나라는 팩트에 동의는 하지만, 모든 소비가 그렇듯 자기만족이 최고의 이득이 아니겠는가.


 전자파와의 이별할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앓아본다. 제게 아이폰 라이트닝 독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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