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나물 Oct 06. 2022

밥솥도 사지 않았던 사람이 집밥을 하면

 명절에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나물이 왔나. 밥은 잘 묵고 다니냐” “네, 그럼요. 잘 먹죠.” “네 어미가 잘해주디?” “그럼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할머니의 말에는 손녀의 끼니 걱정과 엄마의 요리 실력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다.


 결혼을 하고 나자 할머니는 다르게 말했다. “나물이 왔나, 남편 밥은 잘해 멕이고?” 끼니를 걱정해야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에이,  먹죠. 회사   나와요.”  “아이고, 그래도 밥을  멕여야지.” 옆에서 맥주를 마시던 이모들이  편이 되어준다. “요즘 애들이 밥할 시간이 어딨어.” “그래,   일하면 퇴근하고 쉬기 바쁘지.” 할머니는 사방에서 거드는 말들을 무시하고 묻는다. “ 밥솥 아직도  샀나.” “, 없어도 괜찮아요.” “하이고, ...” 이해할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찬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할아버지가  보기 싫어도 매일매일 밥상을 차려온 할머니는 밥솥 하나 없는 나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다. 신혼 초에는 함께 요리 학원도 다녔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회사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외식과 배달로 끼니를 해결했다. 집밥을 해 먹는 건 빨래 같은 집안일과는 다른 차원의 노동으로 느껴졌다. 옷은 한 번 빨면 며칠이고 입을 수 있지만, 음식을 만들려면 메뉴를 고르고, 장도 보고, 요리도 해야 하니까. 그것도 매일매일.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은 언제 있었냐는 듯 뱃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은 재료도 골치 아프다. 간만에 요리를 하는 날엔 품이 많이 들기 일쑤였다. 부엌 집기류가 익숙지 않아 설거지 거리도 한가득 쌓였다. 그때마다 집밥으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졌다. 결혼을 했어도 집밥은 여전히 엄마의 영역이었고, 우리 집엔 집밥이라는 개념조차 만들어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에 오면서 외벌이가 되었고, 지출을 줄여야 했다. 가장 먼저 줄이기로 결정한 항목은 외식비였다. 크로아티아는 식재료가 저렴해 직접 해 먹으면 훨씬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밥의 세계로 자의 반 타의 반 끌려갔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양 조절에 실패해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맥도날드에 가거나, 남은 식재료가 있는데 또 사 온다거나, 재료가 없어서 매일매일 마트를 가야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조리 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약 두 달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요리사이자 영양사, 구매담당자, 물류담당자로 변모했다.


 그렇게 들어온 집밥의 세계는 특별했다.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굴러가는 맛있는 세계다. 메뉴를 선정할 땐 직접 선택한 재료들이 가족의 피와 살이 된다는 점에서 신성해진다. 야채와 단백질, 탄수화물의 정적한 비율을 따져 신메뉴를 추가한다. 메뉴판 목록은 점점 길어지며, 집밥의 정체성을 확장시킨다. 메뉴판의 길이는 곧 나만의 업적이 된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재료의 감각을 느낀다. 제철 식재료를 알아가고, 알지 못했던 향신료의 이름을 기억해둔다. 이로써 수십 번 들춰보았던 요리책은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저녁 다섯 시 반마다 후라이팬에 불을 올려 온 집 안에 향을 입힌다. 이때만큼은 집안의 분위기를 지휘하는 수셰프가 된다. 플레이팅이 잘 됐을 땐 남몰래 박수를 친다. 가족이 한 입 먹은 뒤 “맛있다”라고 말할 때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진다.


 집밥은 다른 차원의 집안일임이 명백하다. 밥 한 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번거롭지만, 각각의 단계 사이엔 경험해 본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기쁨이 숨겨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 행사에서 아무 기대 없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물 쪽지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자랑이 되지 않는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