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교사를 위한 변명03

고등학교 문법 교육의 현실

by zipnumsa

문법 교육의 현장에 대해 연구하려면 문법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문법 교육은 국어 교과서의 한 단원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고등학교 2, 3학년에서는 문법이 선택 교과로 정해져 있어서 학교에 따라 가르칠지 말지 결정할 수가 있다.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배운 문법을 총정리하는 과정이 고등학교 2, 3학년 중에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고등학교에서 정규 교과로 <문법>이 거의 선택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고등학교의 문법 교육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현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이상적인 문법 교육의 이론이 개발되더라도 아예 가르쳐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장에 적용될 수가 없다. 또한 문법 자체가 가르쳐지지 않는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문법 교육을 늘려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공허하다. 문법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관규(2004:72)에서 서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법 영역의 수업은 8.2%에 불과하다. 이어서 덧붙이기를 ‘물론 이 수치도 실제 고교 수업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표 상에는 있되 실제 수업은 다르게 이루지는 경우도 있고, 보충 수업 등을 통해서 특히 문학 영역 수업이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이관규, 2004:72~73).’라고 하였다. 시수만이 아니라 교사들이 생각하는 국어과 내에서 문법의 비중도 10% 내외에 불과하다.

교사들과의 면담 결과는 2004년 이관규의 연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교사들이 인식하는 문법 교육의 위상은 여전히 낮음을 보여준다. 문법 교육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기에 교사들이 이렇게 인식하는가?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서 문법 교육이 아예 사라진 모습이다. 교사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문법 과목이 있어도 문법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지은: 하지만 인문계의 실상이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교육과정에 문법이라는 게 3학년에 있어요. 그렇지만 그 문법 시간에 대체하는 거는 언어영역 문제집이죠. 화법과 작문, 뭐 독서 다 있습니다. 교과서는 다 있습니다. 근데 그 시간에 하는 건 결국.

뿐만 아니라 20대 교사들은 자신들의 학창시절에도 상황이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연구자: 고등학교 때? 그럼 선택과목은 뭐 했어요?
박수진: 선택과목은 뭐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전부 EBS 교재를 풀었어요.
연구자: 싹 다?
박수진: 예,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연구자: EBS는 수능 문제니까 문법 문제도 나왔겠죠?
박수진: 네, 있었겠죠. 근데 샘은 거의 문법 문제를 다루지 않죠. 문학.

이지은 교사처럼 교사의 입장에서 보나, 박수진 교사처럼 학생의 입장에서 보나 문법 영역이 없다는 생각은 꼭 같다. 한편, 고등학교 1, 2학년에서는 적은 비중이나마 문법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동현: 2학년에는 이제 <독서와 문법> 하는데, 다섯 단원 중에 한 단원이야 한 단원, 문법이. 그거만 빡세게 하는데, 한 단원인데, 그 한 단원 안에 보면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요 정도? 그 다음에 의미론은 앞에 살짝 건드리고, 화용론은 아예 없고.

이러한 상황은 윤지현 교사의 말 속에서 "3학년으로 넘기는 건 수업을 안 한다는 거잖아요."라는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

윤지현: 교과서 자체를 선택을. 뭐냐면. 지금 올해 같은 경우에 또 어떻게, 작년에 2학년은 <독서와 문법> 그 다음에 문학 두 교과서를 같이 했거든요. 근데 인제 올해 같은 경우에는 독·문을 3학년으로 넘겼어요. 그리고 문학 원투를 2학년에 다 하기로 했어요. 그 3학년으로 독·문을 넘기는 건 수업을 안 한다는 거잖아요. 3학년은 교과서 수업을 안 하거든요. 교과서 수업을 안 하고 다, EBS 교재 풀이를 하니까.

즉,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선택된 과목의 명칭에 맞게 문법 수업을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과목의 명칭이 ‘문법’이든 ‘작문’이든 상관없이 EBS 교재 풀이를 하게 된다. 따라서 ‘문법’, ‘화법’, ‘독서’, ‘작문’, ‘문학’이 그 해 교육과정 상 고2에 배치되는지, 고3에 배치되는지에 따라서 정상적으로 가르쳐지기도 하고 가르칠 기회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인식은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국어 교사에게 영향을 주어 아래와 같은 신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최혜진: 내가 늘 이렇게 말 해, 문법할 때 이거 환갑잔치할 때까지 기억해야 된다. 왜냐하면 중학교 때 했던 게 평생 가잖아요, 사실은. 고등학교 때 거의 안 하니까.

이때 고등학교란 일반계고(인문계)를 말한다. 전문계고(실업계)에서도 문법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 전문계고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3학년뿐만 아니라 1, 2학년에서도 문법 영역의 수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구자: 실업계에 있을 때는 문법 어떻게 하셨습니까?
김지훈: 실업계에 있을 때는 문법 수업을 거의 안 했죠.
연구자: 선택이 안 됐습니까?
김지훈: 네. 선택도 안 됐고 어 그 때는 이제 국어 안에 포함된 문법만 좀 했죠.
연구자: 그 때는 뭘 위주로?
김지훈: 그 때 했던 게 홑문장 겹문장, 7차 교육과정이었으니까.
연구자: 표기법은 있었겠네요. 외래어 표기법?
김지훈: 외래어 표기법 이런 거 있었는데, 거의 뭐 거의 안 했던 거 같아요.
연구자: 그리고 국어사도 있었던 것 같은데?
김지훈: 그거 하면 애들 못 알아들으니까 다 빼버리고 어쨌든 애들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수업. 실업계 애들은 외우고 이런 거 진짜 싫어하니까.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문법이 외면 받는 원인은 일반계 고등학교와는 조금 다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EBS 교재를 풀기 때문에 문법이라는 과목이 배제된다. 아래 조아름 교사의 말에 따르면, 특성화(전문계) 고등학교에서 는 학력 신장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실습과 자격증 공부에 밀려 국어 교과 전체가 축소된다. 국어 교과가 전체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문법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위축되는 것이다.

조아름: 우리는 3학년 경우는 3월에 수업을 시작하잖아. 4월, 4월 중순쯤 중간고사를 치잖아. 그 다음에, 중간고사 끝나고 나면 5월부터 6월 한, 하순까지 의무 검정 방과 후 수업을 해요. 그럼 내가 작년 재작년, 두 해 3학년을 가르쳤는데, 수업은, 실제 수업은 요까지 끝이야. 그러면 방과 후 수업을 하게 되면 한 여덟 시까지 한단 말야. 그럼 이제 보통교과 시간은 어제 우리 노가다해서 힘들어요, 쉬어요.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지. 그러면 이제 조금만 하고 쉬자, 요것만 하고 쉬자, 이 정도. 그러면 이제 6월 하순에 그 뭐야 자격증 시험을 친다 말이야. 지난주에 우리가 인제 자격증 시험을 쳤는데, 그러고 나면 끝이야. 그러면 이제 기말시험을 위해서 몇 개 정도 하고. 2학기에는 수업을 안 해.

이런 상황은 실업계열뿐만 아니라 예술 계열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연구자: 그렇군. 음, 지금 예고에 좀 오래 계셨는데, 예고에서 이뤄지는 문법 영역
강준영: 없어요.
연구자: 없어요?
강준영: 네. 전무해요.
연구자: 그럼 국어 시간에 뭐 합니까?
강준영: 국어시간에 국어교과 그 당시 있었던 게 7차 국어 상, 하 국립, 그거였는데,
연구자: 안긴문장, 안은문장 다 나오잖아요?
강준영: 수업 안 했지.
연구자: 그러면?
강준영: 아무도 이해 못 해 그거를. 안 했지. 시험 칠 때 외워라 하고. 평가는 해야 되니까.

그렇다고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문법 교육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은 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특강을 개설한다.

연구자: 그러면 <독서와 문법> 과목이 있다는 말이네요? 정규교과에?
강준영: 있지.
연구자: 있는데도 문법 특강을 굳이 개설하신 이유는?
강준영: 3학년에 들어가는데, 아마 뭐 전국 고3들 다 그럴 건데, EBS 수능 특강을 하게 되니까, EBS가 연계 교재가 되니까 그래서, 교육과정상에 <화법과 작문> 1학기 때, 2학기 때 <독서와 문법> 되어 있는데 수업을 안 하지.

극단적인 경우에는 문법 시간이 아닌데 문법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김지훈: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해서 2학기에 문법을 2학기 통으로. 문학 시간이지만 수업은 문법을 했어요. 나만. 일주일에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연구자: 잠시만요. 그러면 선생님 작년에 독서와 문법 과목을 하신 건 아니고요?
김지훈: 작년에 과목은 문학이었어요. 편제는 문학으로 편제되어 있는데 다른 샘님은 문학을 하셨고, 나도 1학기까지는 문학을 했고, 2학기 수업은 내용을 과목, 그 교육과정은 문학이지만 수업을 문법을 했어요.

이를 통해 문법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법 교육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육과정이 학교 수준의 교육과정으로 재편될 때 교과 내적인 요인이 아닌 다른 어떤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법 영역이 문학과 EBS에 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문법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언제든지 문학, 독서, 작문, 화법 수업의 자리를 침해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예상 가능하다. 이는 옛날 문학 수업을 떠올려 보면 더욱 와 닿는다.

“자, ‘삼대’를 펴세요. 교과서 ○○○페이지. 작가는 염상섭이고, 무슨주의 소설이라고 했죠? ㉠사실주의 소설입니다. 중요해요.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첫째, 둘째를 겯고 틀던 수재이고……’에서 밑줄 친 부분은 ㉡‘우열을 가리기 힘듦’이란 뜻입니다. ‘어느덧 깊은 이해와 동정은 버리려야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에서 ㉢밑줄 친 부분은 ‘버릴려야’라고 쓰면 틀립니다. ‘버리려야’를 잘 봐 두세요.”(최현섭 외, 2003:32~33; 밑줄 필자)

위 인용문은 한 대학생이 고등학교 때 받은 국어수업의 모습을 보고한 것이다. 수업 제재는 염상섭의 ‘삼대’이므로 ‘문학’ 영역의 수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은 문학 수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은 문학과 문법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고 ㉢에 오면 문법 수업이 되어 버린다. 면담 자료에서도 문법 중심의 수업 경험이 발견된다.

최혜진: 그래서 요즘 저는 그 생각이 들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는 한 3찬가 4차 세대가 될 것 같은데, 교육과정. 그 때는 선생님들이 페이지 수업을 하셨잖아요. 으흐흐흐. 책을 읽으면서 이거는 은유법, 이거는 리을첨가 이거는 뭐, 무슨 뭐지 그, 호전 현상 그런 거를 페이지마다 계속 반복적으로 해서 우리 세대들은 문법을 굉장히 잘 알아요.

즉, 예전에는 ‘문학 시간인데 왜 문법 지식을 가르치냐’라는 말과 같이 문법 교육이 문학 영역을 침해했다. 지금은 지금은 문법 영역이 문학과 비문학 독해 교육의 침해를 받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국어 수업이 문법 지식 위주에서 탈피한 것은 문학 교육과 독서 교육의 이론을 정립하려는 전공자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문학, 독서 영역의 내적 논리가 탄탄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문학과 독서 영역이 내적 충실을 넘어서서 문법의 영역까지 위협하게 된 것은 교과 외적인 요소의 영향이 크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의 영향을 받는지는 뒤이어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은 문법 교육의 현장 실태를 좀 더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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