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유치원에서 공개 수업을 하였다. 5, 6, 7세 반이 있는데, 각 반을 15분씩 참관하고 마지막으로 7세 반을 30분 동안 다같이 참관하는 학교 개방 행사였다. 우리 아이 반만 보는 게 아니라 유치원 전체를 보게 하는 특별한 유치원이다. 이런 특별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유치원 개방 행사의 제목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인 것. 학교 개방을 하더라도 교사가 어떠한 특별한 수업을 하거나, 아이들이 어떤 준비되고 훈련된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거기다가 원장님은 "아이들끼리의 문제 행동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덧붙인다. 학교 개방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하는데 '아기 돌봄 휴가'를 써서 다녀왔다.
우리 아이는 6세 반이다. 작년에 5세 반 참관할 때 "부모와 떨어진 환경에서 우리 아이의 행동"을 보고 싶었다. 근데 5세 반에 나와 아내가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우리 옆에 달려와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도 각자 자기 엄마 품에 안겨서 안전함을 누리고 있었고,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나"는 도무지 관찰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6세 반에 들어가면서 작년처럼 될까봐 살금살금 들어가서 탁자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두 명이 친구와 접시위에 단추를 배열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물건을 빌리기도 하면서 열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아빠!" 하면서 손을 흔들더니 곧 다시 일에 열중하였다. 혹시나 해서 바로 옆으로 다가가서 구경해도 안기기는커녕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접시위에 단추를 배열하거나 친구와 대화하거나 단추를 빌리러 왔다갔다했다. "이거 뭐야?" 하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꾸미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다른 아이들도 부모들 옆에서 담담하게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1년 사이에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였다.
7세 반. 7세 반에서는 달력의 31일을 보고 30 다음에 31인데 왜 이걸 '31'이라고 썼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31은 삼과 일이지 '삼십'의 '십'이 없지 않느냐고 누가 문제 제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삽십일은 '3101'이라고 써야 한다고 하였다. '3(삼)10(십)1(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3101이라고 쓰면 그건 백보다 크다. 숫자가 세 개면 백인데, 이건 네 개니까 백보다 커서 삽십일이 될 수가 없다."
"30이 삼십이고, 삼십 다음에 삼십일이 될 때 0이 1로 커져서 31이 맞다.",
"달력을 만든 농협 아저씨에게 물어봐야 된다."
이런 결론 없는 이야기를 모두 허용하는 것이 이 유치원의 방침이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간의 토론을 쉽사리 결론으로 몰아가지 않기 때문에 이 논쟁은 며칠 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오늘 또 반복된 것이다. 오늘은 7세 반 선생님이
"방금까지 친구들 이야기 듣고 생각이 바뀐 사람 자리를 옮겨 보세요."
했다. '31'을 지지하는 쪽이 11명, '3101'을 지지하는 쪽이 9명이었다.
놀라워라. 31을 지지하는 쪽에는 남자가 10명 여자가 1명이었고 3101을 지지하는 쪽에는 남자가 1명, 여자가 8명이었다. 수학적 뇌, 논리적 성격, 감성적, 등등 남녀를 구분하는 온갖 표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손가락에 고무줄을 걸어서 모양을 만드는 놀이로 넘어갔다. 아이들이 다섯손가락 역할을 하고 큰 고무밴드를 허리에 두르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 손가락에 노란고무줄을 건 다음, 다섯손가락 역할의 아이들에게
"이쪽으로 가서 저 고무줄을 걸어서 이쪽으로 빠져 나와서 이 손가락에 걸어."
이런 식으로 지시를 내려서 손가락에 걸린 고무줄의 모양과 마루에 서 있는 아이들이 만든 모양이 같아지도록 하는 놀이였다. 한참 후에 마루에는 고무줄로 된 큰 별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환호했다. 참관도 끝났다.
처음에는 '수의 개념을 익히는 데에 남녀 차이가 있구나' 라고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학교에 돌아와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11명과 9명으로 편이 갈라졌을 때 나는 왜 '남녀'의 차이로 무리의 특성을 설명하려 했을까? 그 11명과 9명이 태어난 생일이 빠른 달과 느린 달일 수도 있고, 집에서 학습지를 받아보는지 안 받아보는지일 수도 있고,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몇 시간인지에 따라 무리가 나뉜 것일 수도 있다. 질적 연구에서 조심해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연구자의 편견, 선입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는 편향성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