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 얼마나 알고 가르치세요?
허생전의 한글 번역은 수없이 많습니다. <아이들보이>에는 위와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춘원 이광수의 글입니다. 춘원은 이후에 '허생전'을 아예 장편 소설로 연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보이>의 글은 번역, 춘원판 <허생전>은 패러디라고 보아야 합니다.
<허생전>은 박지원의 책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에 담긴 여러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밤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다가 '나(박지원)'가 들은 '변 부자' 이야기를 하는 중에 '허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후대에 ‘허생 이야기’ 부분만 따로 떼어 <허생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옥갑야화」 편에는 '허생 이야기'가 끝나면 '나(박지원)'의 후일담이 이어집니다.
<허생전>은 세 가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글만 읽던 선비가 부자의 도움으로 큰 돈을 버는 이야기입니다. 허생은 글만 읽던 선비였지만 변 부자의 도움으로 큰 돈을 벌게 됩니다. 둘째, 뜻을 품은 선비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야기입니다. 허생은 돈을 번 다음 도적들을 모아 무인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셋째,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북벌 정책’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변 부자를 통해 허생을 알게 된 이완 대장과 허생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박지원은 당시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허생전>을 완성한 듯합니다. 『동야휘집』 속 <영만금부처치부>에는 선비가 돈을 벌어, 도적들과 함께 섬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이우성 임형택 역편, 이조후기 한문단편집(상), 일조각, 1973에 '여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허생전>의 첫째, 둘째 화소와 일치합니다.
『계서야담』 속 <식보기허생취동로>에는 선비가 돈을 벌고 나서, ‘이완 대장’과 ‘북벌 정책’을 의논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이우성 임형택 역편, 이조후기 한문단편집(상), 일조각, 1973에 '허생별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허생전>의 첫째, 셋째 화소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박지원은 이야기를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농공상의 신분 계급, 무너져가는 양반 사회, 당대의 경제 구조, 북벌 정책과 실학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자기만의 사상을 담아내어 완결된 서사구조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것이 '허생형이야기' 류의 야담과 <허생전>이라는 근대적 소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지요.
‘허생’은 근대적인 인물이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일정한 한계를 지닌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가 없이 돈을 빌려주는 '변 부자'의 태도나 번 돈의 절반을 바다에 버리고 나머지를 백성 구제에 쓰는 '허생'이 태도는 인간의 가치가 ‘돈’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재물과 화폐’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드러냅니다. 이러한 '재물, 화폐, 돈, 물질'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물질 만능의 현대인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석제도 자신의 짧은 수필에서 '허생'을 무협지의 은둔고수에 빗댄 적이 있듯이, ‘허생’의 사상과 실천은 대단히 매력적이면서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 후대의 작가들은 자기만의 ‘허생 이야기’를 많이들 썼습니다. 이광수의 <허생전>, 채만식의 <허생전>, 오영진의 <허생전>, 오효진의 <장씨녀전>, 김종광의 <허생의 죄>, 장일홍의 <허생의 웃음소리>, 이남희의 <허생의 처>, 최시한의 <허생전을 읽는 시간>, 오세영의 <북벌> 등이 <허생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1925년 잡지 「신소년」3권 7호에 허생전 이야기가 <온 세상을 흔들던 가난뱅이 허생원(1)>이라는 제목으로 실립니다. http://www.childweb.co.kr/his/3-7.htm 그리고 3원 8호에 (2)편이 실립니다. http://www.childweb.co.kr/his/3-8-3.htm 소년잡지인 만큼 이완 대장과의 시사삼책 부분을 생략되고 허생이 변 부자에게 부자된 내력을 설명하고는 이야기가 끝납니다. 잡지 연재 형식이라 (1)편의 끝에는 (또 있소)라고 적혀 있고 (2)편의 끝에는 (끝)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허생과 아내의 대화, 허생과 이완의 대화를 대비한 재미있는 논문을 읽었다. 아내의 공격에 허생은 '어떻게 하겠소.'로 세 번 받아친 끝에 집을 나선다. 허생의 공격에 이완이 '어렵습니다.'로 세 번 받아치자 허생은 자취를 감춘다. 전반부에 허생으로 대표되는 비판의 대상과, 후반부에 이완으로 대표되는 비판의 대상이 같은 구조를 갖춤으로써 풍자의 재미가 한껏 배가 된다. 박지원의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전반>
아내: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
허생: (1)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아내: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 (2)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아내: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허생: (3)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아내: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과거도 안 본다(1), 장인바치 일도 못한다(2), 장사도 못 한다(3)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후반>
허생: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완: (1) 어렵습니다.
허생: 명나라 장졸들의 자손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느냐?
이완: (2) 어렵습니다.
허생: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깍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완: (3)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 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 (크게 꾸짖어 말했다.)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