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2인 유나와 유2인 지민이를 데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 구경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꿈 해몽 코너에서 유나와 서로 꿈 풀이를 했다.
"아빠는 어제 구름 꿈을 꿨어. 우와, 구름은 엄청 좋은 일이 생길 꿈이래."
"나는 돌 꿈을 꿨는데."
돌멩이 꿈은 따로 없고 돌 위에 누워서 자면 좋은 꿈이라고 돼 있었다.
"유나야, 이제 꿈 속에서 돌이 나오면 그 위에 누워서 자. 알겠지?"
다음날 아침에 유나가 꿈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에 꿈 꿨어."
"돌이 나왔어?"
"아니."
"구름이 나왔어?"
"아니."
"어떤 꿈이었어?"
"말하기 어려워."
"이것저것 섞여 나와서 설명하기 어렵구나?"
"응."
"기분이 어땠어?"
"모르겠어. 답답했어."
혹시 뭔가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을 겪은 건가, 하면서 잠시 앤소니 브라운의 <꿈꾸는 윌리> 한 장면을 떠올렸다. 윌리가 꿈속에서 발이 붙어서, 뒤에 누가 쫓아오는데도 꼼짝 못하는 장면이다.
그러고 있는데 동생 지민이가 끼어들었다.
"언니야, 그럴 땐 울어. 울면 마음이 편안해져. 나는 그럴 때 우는데."
유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속으로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어릴 때부터 동화책 읽다가 눈물이 흐르자 묻지도 않았는데
"이거 운 거 아니야. 하품한 거야."
하며 우는 것도 스스로 억압하는 성격이니 유나는 아마 울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태준의 <작품애>에 "얘, 울문 뭘 허니? 운다구 찾아지니? 울어두 안 될 걸 우는 건 바보야."라는 말이 나온다. 학교 과제를 멋지게 했는데 그걸 잃어버려서 우는 아이에게 한 여학생이 하는 말이다.
우는 일이 한 순간 마음의 위로를 줄 수는 있지만 꿈속의 답답함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나 입장에서는 우는 것보다는 좀더 실질적인 해결책을 바랐을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문학 시간에 '카타르시스'를 배울 때나, 박지원의 수필 <통곡하기 좋은 곳>을 배울 때 '도대체 공감이 안 되는군.'하고 또 답답해 할까봐 염려도 된다.
유나도 지민이도 서로 다르게 타고난 그대로 자라고 있을 뿐이니, 답답할 때 우는 게 좋으면 울면 되고, 울기 싫으면 안 울면 된다. 최소한 유나가 자랐을 때, 답답해서 우는 친구에게
"울면 뭐하니? 답답하다고 우는 건 바보야."
이런 말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