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에는 유나와 지민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자주 나갔다. 가끔씩 여자아이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내 말 들어야지."
이런 이야기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1살 나이차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생각하겠지만 5, 6, 7세 때 1년은 정말 긴 시간이다. 5세 아이에게 1살은 50세 성인의 1살과는 다르다. 5세 아이에게 1년은 자기 인생의 5분의 1이다. 5세 아이에게 1살은 50세로 치면 10년에 해당하는 나이차인 것이다.
오늘 집에서 유나와 지민이가 별자리와 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나는 말 띠이고 지민이는 닭 띠이다. 지민이가
"엄마는 무슨 띠야, 할머니는 무슨 띠야, 할아버지는 무슨 띠야?"
하면서 엄마한테 물어보더니 유치원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유치원에 도연이 빼고 다 닭 띠야. 도연이는 토끼 띠래."
엄마가 말했다.
"도연이가 생일이 빠른가? 아니, 그래도 안 맞는데?"
언니인 유나가 끼어들었다.
"야, 그러면 도연이는 너희랑 친구가 될 수 없어."
지민이는 지지 않고
"아닌데? 도연이는 주리랑 엄청 친해."
라고 했다.
친구란 무엇인가? 나이가 같아서 우연히 같은 반에 배정된 타인의 이름인가? 친하게 지내기만 한다면 6살이나 차이가 나는 토끼 띠랑 닭 띠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후자이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항상 그 아이들을 제자라기보다는 친구라 생각하고 대한다. 가끔씩 '친구 같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후배교사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내가 '제자라기보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개념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학생들이 교사를 친구처럼 생각하기'인 듯했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교사 자신은 학생을 여전히 학생, 제자, 미성년으로 선을 긋는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를 교사로 받아들여야 교육이 성립한다. 학생들이 교사를 친구로 인식하면 교육하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교사가 학생을 여전히 학생, 제자, 미성년으로 인식하면, 선을 넘는 학생을 감내할 관용의 폭이 좁아지고 권위적이 되기 쉽다.
내가 말하는 친구 같은 교사는 '교사가 학생을 친구처럼 생각하기'에 가깝다. 교사가 학생을 친구처럼 대하면, 학생, 제자, 미성년을 대하는 마음보다는 조금 평등하게 대우해 줄 가능성이 높고, 학생이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학생의 실수가 아니라 친구의 실수로 보고 좀 더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닭 띠와 토끼 띠가 아니라 띠동갑이 두번 돌 정도의 나이차가 있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학생과 제자의 관계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