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어교사모임 회지읽기소모임
2023년 4월 18일 오후 4:36 에 회지읽기 소모임에 올린 글이다.
<교사의 선생님> 꼭지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 국어 교사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분(들)을 만나 달라진 삶 또는 그 분(들)에게 받은 영향을 소개한다. 이러한 종류의 글은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는가? 재미인가? 감동인가? 깨달음인가? 훌륭한 교사에 대한 정보인가?
내가 문학 소년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문학을 좋아하는 소녀에게 문학을 좋아하는 교사가 영향을 주어 문학을 종아하는 교사로 자라게 했다는 이야기는 지루해서 하품이 나온다.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이 글의 의미를 우리 소모임의 다른 선생님들이 읽어내고 밴드에 소개해 줄 것이라 믿는다. 회지를 함께 읽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이 글의 결말이 해피엔딩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 세 선생님의 ‘그물’이 없었다면, 박민아 선생님은 한 명의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물론, 박민아 선생님이 계신 그 학교의 학생들은 축복을 받게 되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나의 편견으로 말하자면, 이런 류의 회고글은, 일단 독자(나)가 보기에 ‘이름값’이 매우 큰 사람이 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크나큰 존경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의 기억에 남을 정도의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실까? 하는 마음이 생길 때, <교사의 선생님> 꼭지가 매우 와닿을 것 같다. 만약 필자에 대한 일말의 정보/기대/존경이 없는 상태라면, 그 분의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어도 그다지 감흥이 없지 않을까? 또한 필자의 기억 속의 선생님에 대한 회상으로 그치지 말고 그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가서 짧은 인터뷰, 추억팔이 등을 하며, 교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생님의 ‘지금 여기’를 함께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 옛적에 그런 수업을 하신 분(들)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면, ‘나도 늙으면 저런 모습의 교사로 남고 싶다.’라는 느낌으로 젊은 교사들이 교직 생활의 방향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만약 필자의 ‘이름값’에 제한이 없다면, <학생의 선생님>이라는 꼭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니면 <부모님의 선생님>, <00의 선생님>에서 00에 무엇이 들어가든 상관 없다. 그냥 ‘예전에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이면 충분하지, 굳이 ‘교사’의 선생님이라는 꼭지일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교사의 선생님에서 <선생님>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교사의 선생님> 꼭지에서 ‘교사’에 좀더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없을까?
또한 <학생의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더 이어간다면, 전국모 회원들을 대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호에 맞추어 ‘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국어 선생님’에 대한 ‘회고글/소개글’을 모아서, 선별해서 잡지에 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가 몰랐던 곳에서 좋은 수업을 하고 있는 전국의 선생님들이 소개될 것이고(또한 그분들은 학생의 눈으로 이미 검증된 분들일 것이고) 우리는 그 분의 수업을 소개받거나, 수업 철학을 듣거나, 다음 호의 필자로 모실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