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에서 편히 쉴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하여
퇴근 후 현관문을 닫는 그 '철컥' 소리는,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자 나만의 우주가 다시 시작되는 소리였다. 그곳이 비록 눅눅한 공기로 가득 찬 반지하 방일지라도, 그 문 안쪽은 완벽한 나의 공간이었다. 각종 사무용품과 기자재 등으로 발 디딜 틈 없던 5평짜리 사무실의 소음과 먼지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분리시켜주는, 온전한 쉼터였다.
그러다 어느 날, 세상 모든 집의 그 단단했던 문이 '일'이라는 녀석에게 무력하게 열려버린, 거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그 때 부동산 현장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역에서 몇 분 걸려요? "라며 물어보던 사람들보다, 다들 어딘가 지친 표정으로 애틋하게 물었다. "사장님, 방 하나가 꼭 더 필요해요. ", "서재는 아니더라도... 그냥 노트북이라도 둘 작은 드레스룸 같은 것이라도 있었으면..."
화상 회의 모니터 속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급도였다. 누군가는 근사한 서재를 배경으로 앉아 있었지만, 누군가는 방금 일어난 듯한 침대 모서리에 겨우 몸을 기댄 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식처여야 할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는 그 사소한 행위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그냥, 사라졌다.
잠들기 직전, 침대 머리맡에서 확인하는 메일 한 통이 안식처였던 내 방의 공기마저 서늘하게 바꿔버렸다. 지옥철은 피했지만, 내 우주 전체가 답답한 사무실이 되어버린 기분. '쉼'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녀석은 그릇에 얌전히 담기는 평범한 내용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 뜨겁고 단단해서, 그릇 자체를 녹이고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쉬어야 할 내 공간이, 성과를 내야 하는 긴장 가득한 공장으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집'의 본질은 평수나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니었구나. 그저 바깥세상의 소음을 잠시 멈춰주는 '문' 하나, 세상과 나를 분리해주는 '단단한 벽' 하나.어쩌면 나는 정말, 그 소박하고 사소한 ‘선’ 하나가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내 마음을 짓누르던 질문들은 다시금 본질로 돌아왔다.‘선’이 허물어진 이곳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다시 온전한 나의 우주를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까. 억지로라도 나 자신에게 일과 ‘선’을 그어주기로 했다. 잠깐이라도 노트북을 덮으며 '오케이, 잠시 쉬자'고 혼잣말을 건넨다. 그러면 그 말이 내 안에서 맴돌며, 아, 드디어 오늘의 일이 끝났다는 신호처럼 작게 울린다. 그런 희망, 비록 근사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나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위로다.
가끔은 업무와 휴식 사이에 억지로라도 세운 저 낮은 책장 하나가, 생각보다 큰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걸로 충분한 걸지도.우리는 여전히 이 거대하고 어수선한 실험실 같은 세상 속을 살아간다. 그 안에서 누구나 자기만의 우주를 지켜내기 위해, 조용한 스스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