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속도로 달릴 때, 나는 내 방에서조차 길을 잃었다

나만의 속도를 찾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집우주

2호선 지하철, 창밖 너머 불쑥 비치는 내 얼굴이 낯설었던 때가 있었다. 손에는 늘 어김없이 '경제적 자유'를 약속하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고, 하루를 분 단위로 잘게 쪼개가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문득 돌아온 내 방에는, '나'의 흔적은 사라지고 잘 짜여진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하나만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과 빼곡히 적힌 실천 목록들. 내 방에서도 마음 놓고 숨 쉴 수 없었다. 그곳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또 하나의 공장이 되어 있었다.


부동산 현장에서도 이런 '속도'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가장 빨리 오를 곳이 어디죠?”,

“가장 빠른 시세 차익을 원해요.”


그들의 눈빛에는 오직 '속도'와 '수익률'이라는 표지판만 빛났다. 담담하게 그 질문들을 들으면서, 나는 그 조급함 속에서 어렴풋이 예전 내 방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반대로, 몇 해 전 우연히 만난 한 노부부가 생각난다. 재개발에서 소외된 오래된 동네에 머무르고 싶다며, 모두가 외면하던 낡은 단독주택을 사겠다고 찾아왔던 그들. 집 안팎이 무너지고, 낡은 마당에는 풀이 엉켜 있었다. 재개발이 무산된 오래된 동네, 낡은 단독주택을 사겠다고 찾아온 그들이었다.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손사래 치는 집이었다. 그들은 그 집을 사서, 1년 내내 직접 고치고 다듬었다. 시멘트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을 일구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낡은 흔들의자를 놓았다. 그들은 집의 속도에, 그리고 자신들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공간을 가꾸었다.


1년 뒤 다시 찾아간 그 집은 완전히 다른 우주가 되어 있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의 무늬와, 두 사람의 삶이 그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남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보폭을 찾을 때 비로소 진짜 내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비 새던 반지하 방에서 나는 불행했지만,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나만의 열망으로 뜨거웠다. 남들이 옳다는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더디고 불안할지라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나를 온전히 '집'으로 데려다주는 가장 성실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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