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이정표 끝에서 마주한 진짜 질문
한때 나 역시 ‘경제적 자유’라는 단 하나의 이정표만을 따라 쉼 없이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손에는 부를 약속하는 책이 들려 있었고, 통장의 숫자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더 비싼 집, 더 넓은 집으로 가면 이 지긋지긋한 불안과 공허함도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부동산 일을 시작하며, 나는 마침내 그 길의 끝에 도착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공간이 모두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강이 정면으로 보이는 최고급 주상복합에 살던 한 중년의 남자가 기억난다. 그는 집 안을 최고급 수입 가구로 채웠지만, 정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창가 앞 작은 안락의자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는 텅 빈 거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집은 성공한 내 모습 같긴 한데, 진짜 내 집인지는 잘 모르겠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둘 곳 하나 찾지 못한 사람의 쓸쓸함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남자의 공허함을 마주한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 새던 반지하 방에서 ‘이곳만 벗어나면’이라며 열망했고, 재고 쌓인 사무실에서 ‘성공만 하면’이라는 주문을 외웠던 나. 내게 집과 공간은 늘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발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지, 삶의 목표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평생 ‘어떤 삶’이라는 내용물을 채워나가는 존재다. 집은 그 내용물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그릇일 뿐이다. 경제적 자유는 더 크고 멋진 그릇을 살 수 있게 해주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오롯이 나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신들의 집을 찾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어떤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으세요?”
이것이야말로 경제적 자유라는 화려한 이정표 끝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질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