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타인과 냉장고를 공유한다는 것

셰어하우스, 그 어색한 공존의 우주

by 집우주

비가 새던 반지하 방에 살았다. 그럼에도 그 공간은 온전히, 아니 100% 나만의 우주였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두 발을 뻗었고, 냉장고 속 내 우유에 굳이 남의 이름을 쓸 필요도 없었다. 공간의 질이 어떠하든, 그곳은 나의 것이 분명했다.

부동산 현장에서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 많은 셰어하우스나 중저가 고시원을 임차 중개할 때는

나는 매번 그 시절과는 다른 기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공간은 완벽하게 분리된다. 신발장에는 각기 다른 주인의 신발들이 위태로운 경계를 이루고 있고, 냉장고 문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보이지 않는 작은 전쟁터다.

가장 흥미로운 곳은, 역시 거실이나 주방, 휴게실 즉,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다. 분명 가장 넓고 좋은 공간이지만, 그곳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어색한 중립지대다. TV는 늘 꺼져있고, 소파는 늘 비어있다. 그곳은 함께 쉬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일 뿐이다.

우리는 왜 기꺼이 이런 불편함을 선택했을까.

단순히 월세를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1인 가구의 고독이 버거워서일 수도.

혹은 그저 이 꽉차있지만, 삭막한 도시에 '누군가 있다'는 최소한의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가장 해야 밀접해 있어야 할 공간의 주도권을 절반쯤 내어주어야만 한다.

생각해 보면 셰어하우스는 '함께 사는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각자의 우주'를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타협점. 그게 아닐까.

거실이라는 이름의 텅 빈 우주 공간을 사이에 두고, 저마다의 방문을 닫아 건 채 숨어 있는 작은 행성들이라고 치면.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아니라, 위태롭게 공존하는 작은 행성들의 집합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곳을 '은하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참 아이러니다.

그 어색한 공존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나만의 방 한 칸이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 우주인지를 매일 밤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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