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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Jun 29. 2022

워킹맘, 세 번의 이직

나 아직 살아있네!

14년의 커리어. 5년의 워킹맘 생활.

전체 경력 기간 동안 다섯 번의 이직 경험이 있었고, 그중에서 워킹맘이 된 후에는 세 번의 이직을 했다. 


워킹맘이 되고 나서 오히려 이직의 빈도가 잦아진 것은 내가 워킹맘이라서가 아니다. 단지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 직장을 찾다 보니 5년 동안 지금의 회사를 포함하여 세 곳의 회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약 2년 정도의 주기로 이직을 하면서 새삼 2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워킹맘으로서 첫 번째 이직.

그때는 임신, 출산을 경험한 회사에 더 머물러도 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결심한 이직이었다. 임신 전에도 이미 회사에서는 썩 좋은 평판을 만들지 못했고, 승진 누락을 경험했으며 복직 이후에도 육아휴직하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쓴다고 해서 상사나 주변 동료들이 만들어 놓은 나에 대한 프레임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첫 번째 이직을 하면서 면접을 볼 때는 워킹맘으로서 많은 장벽을 느꼈다. 

경단녀(단지 육아휴직을 했을 뿐인데!!!)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면접 때 아이는 누가 돌보냐는 질문도 끊임없이 받았다.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아이를 낳은 후의 이직은 단지 내가 어떤 업무를 잘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알게 됐다. 막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이후에 시도하는 이직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의 경력이나 지식이 이전보다 적어진 것은 아닌데 왜 장벽은 더 높아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이직은 재직하던 회사의 경영진이 변경되고 회사의 비용(인건비, 교육훈련비, 복리후생비 등) 절감이 HR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환경 속에서 내가 하던 업무에 대한 가치가 완전히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근무만 하면 칼퇴를 할 수 있고, 종종 제주도로 출장을 갈 수 있는 꽤나 괜찮은 조건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업무 가치가 낮아진 상황에서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한 중요한 업무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그저 시간만 채우면서 회사를 다닐 수는 없었다. 워킹맘도 얼마든지 커리어에 욕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두 번째 이직에 도전했다.


두 번째 이직은 첫 번째 이직에 비해서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워킹맘이지만 이미 복직 이후 충분히 재직 기간을 갖고 있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전 직장에서 주요 담당 직무의 비중이 감소하여 맡게 된 여러 HR과 관련된 업무 경험이 오히려 폭넓은 경험이라는 강점이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에 비하여 "아이는 누가 돌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거의(그렇다고 0은 아니다) 받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의 이직에서 최종적으로 합격하게 된 회사는 IT 업계의 기업이었다. 이전까지 재직했던 전통적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적응하며 나름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었다. HRD(인재개발) 분야를 주로 하다가 IT 기획/개발 조직의 HRBP(HR Business Partner, 특정 조직의 HR 담당자로 배치되어 현업과 긴밀하게 의사소통하면서 조직 운영 및 리더십 등에 대한 가이드, 솔루션을 제공을 하는 직무)로 직무를 전환하기도 했다.


2년 반 정도 재직하면서 일에 대한 재미와 업무의 확장성을 느끼며 일할 수 있던 회사였지만, 회사가 사모펀드로 매각되고 임원진들의 교체, 동료들의 퇴사를 바로 옆에서 경험하던 끝에 나 역시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워킹맘으로서 세 번째 이직은 더욱더 격세지감을 느꼈다. 워킹맘이라는 것이 이직과 새로운 회사의 적응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실시되고 잘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심사, 실제 다양한 사례나 주의할 사항 등이 많은 기업에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채용 절차에서 가족관계 등 직무와 무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실제로 몇 곳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는데 그 어느 곳에서도 이력서에 작성된 내용 외에 불필요한 정보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종적으로 입사를 결정한 지금의 회사는 구성원들이 굉장히 젊은 연령대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의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수에 비례하여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하거나 어린이날에 자녀를 위한 정성이 담긴 건물을 집으로 배송해 주기도 하는 등 가족들에게도 혜택이 되는 복리후생이 많다. 미혼 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복지가 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겨난 것 같긴 하지만 회사의 전반적인 제도, 복리후생, 문화 등이 워킹맘에게 전혀 차별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개인의 상황을 존중하는 회사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워킹맘으로서 이직한 세 번째 회사에서는 나의 직무인 HRBP 본연의 역할을 더욱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조직 리더의 보조적인 입장이 아니라, 동등한 HR의 전문가이자 대표자로서 담당한 조직을 위한 어드바이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진단을 통해서 리더에게 조직 운영과 관련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리더십을 향상할 수 있는 코칭, 워크숍,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조직 구조 설계, 팀 운영 방법, 인재 선발 등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이게 정말 HRBP가 할 수 있는 일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길게 적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지속적으로 커리어를 잘 쌓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시도하다 보니 결국 내가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킹맘에게 커리어는 사치인 건지 고민하던 시기를 버티며 어떻게든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하던 중, 아이는 점차 커져서 엄마가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를 지나게 되었고 나의 커리어는 더욱더 견고해졌다. 게다가 시대가 조금씩 변해가면서 이직 과정에서 워킹맘으로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부분도 개선되어가고 있으며, 내가 선택한 업계(IT)의 특성 때문인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참견은 낮아지고, 다양한 개인의 상황 및 성향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다. 


물론 모든 것이 나의 노력, 실력만으로 찾은 것은 아니다. 적당한 운(점차 나와 Fit이 맞는 조직으로 이동한 것)과 가족들의 이해와 지원,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근무 방식의 변화(유연근무제, 재택근무의 활성화) 등의 적절한 조합이 지속적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마흔을 목전에 두고 직장 경력은 벌써 만 15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견사원 이상의 관리자급 직원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여러 가지 커리어에 대한 목표와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업무를 하면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계속해서 배우고, 더 유연한 자세로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좀 더 나의 장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찾아다니는 영원히 성장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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