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숲으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숲 Apr 14. 2024

디저트 막걸리

다시 모이기로 한 날이 되었다. 뽀구리는 미미미와 함께 자리에 참석했다. 미미미는 뽀구리의 이마 위에 앉아서 왔다. 

“어? 뽀구리, 이마에 문신이라도 한 거야?” 뽀구리 이마에 검은 무늬를 만든 미미미를 보고 다다가 물었다. 

“푸하하하! 문신이라니, 내 이마 위에 이 친구들은 미미미야. 인사해. 대신, 쉿! 조용히 해야해. 미미미는 목소리가 아주 작거든.”

뽀구리가 미미미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모두에게 경고했다. 그말에 친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미미미를 바라보았다. 미미미, 그중에 미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큭큭, 안녕! 우리는 미미미야. 문신이 아니고. 나는 미가, 옆에 이 두 친구는 미나와 미다야.”

미나가 인사를 이어갔다. “뽀구리가 너희들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특별한 자리에 우리를 맞이해줘서 고마워.”

미다도 한마디 거들었다. “뽀구리는 우리 생명의 은인이야. 그런 뽀구리의 친구들이라니 너희 모두와 친해지고 싶어”

“생명의 은인?” 다다가 되물었다.

“물에 빠져 하마터면 큰 일을 당할 뻔한 미다를 뽀구리가 구해줬어.” 미가가 말했다. 

숲 친구들이 고개를 돌려 뽀구리를 바라봤다. “정말?” 

“이야… 뽀구리가 대단한 일을 했구나!” 두털이가 뽀구리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람지가 뽀구리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역시! 뽀구리는 좋은 친구야!”

뽀구리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이 크게 부풀어올랐다. “아니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뽀구리가 웃음을 참으며 의젓하게 말했다.


두 번째 모임을 시작했다. 두털이는 커다란 가방을 열어 막걸리를 꺼냈다. “이번엔 아주 진한 막걸리야.”

이번 막걸리는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막걸리는 과천미주와 반대로 아주 진해. 초콜릿처럼 꾸덕해.” 친구들이 탄성을 질렀다. 두털이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친구들을 둘러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대번에 취해버릴 거야. 한모금 입에 머금자마자!”

“와아아아!” 들뜬 모두의 아우성을 신나서 지켜보던 두털이가 흥분이 가라앉자 미미미에게 말했다. “미미미, 혹시 할 얘기 있어?” 

미나가 말했다. “막걸리 병에 그려진 그림이 재밌어!”

병에는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버섯, 거북이, 두루미, 사슴이 그려져있었다. 미나가 병 위에 올라타 걸으며 말했다. “이쪽에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어.” 그림 한쪽 소나무 아래에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와, 미나가 중요한 걸 발견해줬네!”

두털이가 병을 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이규보 시인이야. 무려 천 년 전 사람이야. 이규보 시인이 고위 공무원 자리에서 물러나며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지었대.” 두털이가 경기백주를 높이 들어올리더니 마치 1000년 전으로 돌아가 이규보가 된 듯 연기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땐 귀한 청주를 취하도록 마셨는데 관직에서 쫓겨나니 젊을 때 돈 없어서 마시던 백주(막걸리, 탁주)를 다시 마시는구나. 당나라 시인 두보는 백주에 미묘한 이치가 있다 하고, 이백은 청주를 성인에 백주를 현인에 빗대었는데 어째서일까 난 잘 모르겠다. 처지가 이리 됐으니 백주를 마실 뿐. 고려 제일 술꾼인 내가 물탄 막걸리는 영 시원찮고 술다운 백주 어디 없는가? 어? 과천도가의 경기백주? 14도 원주라고? 이것 봐라, 백주가 맛있잖아! 허허” 두털이의 목소리는 연극배우처럼 우렁차고 한탄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막걸리를 담그면 본래 이렇게 맛도 향도 도수도 진한 술이 만들어져. 그걸 ‘원주’라고 하는데, 거기서 맑은 부분만 떠내거나 아니면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기도 하지. 그런데 이 막걸리는 원주를 그대로 떠낸 막걸리야. 그러니 술꾼 이규보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있으니 더 재밌지?“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야.”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미다가 말했다.


“자, 이제 막걸리를 따라줄게. 마시면서 더 이야기나누자.” 잔에 막걸리가 꾸덕하게 차올랐다.


“초콜릿을 녹인 것 같아!”

“하야니까, 화이트 초콜릿?“

”그래서 경기‘백’주인 걸까?“


모두 막걸리를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알갱이가 느껴져.”

“뭉게 구름이 달콤한 크림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아.”

“질감이 있어. 곱고 부드럽다기 보다는 야생처럼 터프해.”

“깊은 숲 같아.”

”축축한 느낌!“

“으음~ 쌉싸름한 마무리까지 진짜 초콜릿 같기도 한데?”

“진한 막걸리가 입안 가득! 도수가 높은 술이라면서 정신이 번쩍 뜨이는 듯 해!”

“참외를 갈아넣은 것 같아”

“배도 같이?”

“한 여름날 우리 숲처럼, 생명력으로 가득찬 빽빽한 숲처럼! 무언가로 가득차 있어.”

친구들은 너도나도 느낌을 말했다. 

”막걸리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어? 뭘 넣은 거야?“ 

두털이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아니, 아니야! 신기하게도 쌀이 발효되면서 이런 맛이 난다고! 생명 활동의 신비지.“


람지가 생크림 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나왔다. 두털이가 미리 부탁한 안주였다.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 안주?”

“응, 생크림 케이크를 입에 머금고 경기백주를 마셔 봐!”

달콤한 케이크를 크게 베어물고 경기백주를 마시자 케이크가 더욱 부드럽고 진하게 녹아내렸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살짝 부어도 먹어보았다. 달콤함에 달콤함이 더해지면 느끼하고 부담스러울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아이스크림을 이룬 우유의 풍미가 더욱 고소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경기백주의 달콤한 과실 향도 더욱 풍부해졌다. 


단 맛을 유난히 좋아하는 미미미가 외쳤다. “ㅇㅇㅇㅇㅇ ㅇㅇㅇ ㅇㅇ!”

미미미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친구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때 뽀구리가 눈치를 채고 말했다. “미미미, 뭐라고?” 친구들 모두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미미미를 바라보았다. 


“아... 경기백주는 디저트 같다고 했어.”

“이야, 정말 그렇네!”

그 뒤로 친구들은 잊지 않고 미미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처럼 누군가 물어보기도 했고 아니면 모두 약속한 것처럼 눈빛을 나눈 뒤 미미미를 바라봤다. 미미미가 말할 때는 모두 조용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람지가 두털이에게 물었다. “연구실은 어떻게 되어 가?”


기다렸다는 듯이 들뜬 표정의 두털이가 말했다. “지난주에 연구실을 구했어!” “우와! 정말?” “응, 심지어 첫번째 막걸리도 담궜어. 열흘 쯤 기다리면 첫 막걸리를 맛보게 될거야.” “우리도 맛볼 수 있는거야?” “물론이지! 제일 먼저 너희들에게 맛보여줄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숲 친구들의 일주일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