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는 일주일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유난히 봄 소식이 이르다는 섬, 보미도에 가기로 했다. 집 떠나 보내는 일주일, 배낭이 다다만큼 컸다. 무거운 짐 한쪽에는 두털이가 준 과천미주를 쌌다.
보미도까지 날아가는 길은 한나절이 걸렸다. 바람을 잘 타면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어 새벽 같이 집을 나와 바람길을 향해 부지런히 날았다. 새벽의 고요가 온 세상을 무겁게 덮고 있었다. 다다의 날개짓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삐앗!” “쩡!” 동이 터오르며 감각도 깨어났다. 금방 아침이 되었고 소리도 요란해졌다. 바람길에 들어섰다. 부산스러운 세상을 뚫고 먼 여행길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며 다다는 말없이 날개짓을 했다. 가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보미도에 가까울수록 높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줄어들었다. 대신 커다란 송전탑이 줄 이어 서있었다.
보미도에도 아직 봄은 일렀다. 그래도 들썩이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땅에는 잿빛보다 연두 빛깔이 더 많아졌다. 가지마다 부풀은 멍울을 터뜨려 어린 잎과 꽃을 내놓고 있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 잎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하늘하늘했다. 부서지는 햇살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찔레나무 가지가 넝쿨처럼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막 잎이 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러고보니 찔레꽃이 피려면 아직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문득 찔레꽃 향기가 달큰한 봄날이 몹시 그리워졌다. 과천미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하루종일 여행하느라 긴장한 몸이 풀어지며 노곤해졌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거기 있을리 없는 찔레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두털이는 연구실을 구했다. 벼리나무는 뿌리를 땅속 깊숙이도 내리지만 지면을 따라 굵고 길게 펼치는데 그 벼리나무 뿌리 아래 흙을 파내어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벼리나무 뿌리가 지붕이 되어줄 것이다. 두털이는 지하 세계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천장을 높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흙을 많이 파내야 했다. 3일을 내리 파내어 친구들 50여 명 정도는 너끈히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을 마련했다.
두털이는 그동안 모은 막걸리들을 냉장고에 가지런히 넣고 다 마신 막걸리병도 버리지 않고 한쪽 벽면을 장식했다. 크고작은 테이블을 두어 누구든 찾아오면 편안한 자리를 내놓기로 했다. 또다른 벽면에는 좋아하는 책들을 세워놓았다. 별빛을 받으며 밤새 책을 읽는 황홀한 몰입을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리고 항아리를 여덟 개 준비했다. 여기서 막걸리를 빚을 것이다. 쌀의 품종, 발효 온도, 누룩의 비율 등 술 빚는 조건을 달리해서 비교하려면 항아리가 여럿 필요했다.
근사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두털이는 한 구석에 앉아 공간을 둘러보다 천장을 이고 있는 벼리나무의 잔뿌리를 걷어내었다. 그러자 바깥의 빛이 점점이 새어들어왔다. 그 모습이 하늘에 떠있는 별 같았다. 두털이는 연구실 이름을 별주막이라고 지었다. 기념으로 첫 술을 담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