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친구들의 일주일은 길었다.
람지는 여느때처럼 이른 아침 아직 해도 뜨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잠에서 깨면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기지개를 폈다. 허리를 쭈욱 펴면 몸이 평소보다 두 배로 길어졌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발가락 사이를 쫙쫙 폈다. 몸을 둥그렇게 굴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즈음이면 숲 어딘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많아져 오케스트라가 되는 순간, 람지는 집을 나섰다. 호다닥 나무 위로 뛰어올라 이 나무 저 나무를 따라 폴짝 호다닥, 폴짝 호다닥! 뛰었다. 나뭇가지의 탄성을 따라 퉁겨 올라가면 저 높은 가지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약수터. 맑은 물을 맘껏 들이켰다. 숲속의 상쾌한 아침! 람지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그날은 좀 더운 날이었다. 봄이 오려다 여름이 온 것 같은 날, 목이 마른 람지는 오후 무렵 다시 약수터를 찾았다. 더운 건 람지만이 아니었는지 그날따라 약수터에 사람이 많았다. 잠시 기다리며 사람들이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진한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람지를 발견했다.
“어머! 다람쥐예요!”
람지는 흠칫 놀랐지만 잠자코 눈치를 살폈다.
“세상에 귀여워라!”
여자가 핸드백을 뒤지더니 작은 비닐을 부욱 뜯었다. 아몬드, 캐슈넛, 해바라기 씨 같은 견과류와 말린 과일이 들어있었다. 여자가 람지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왔다. 냄새가 더 진해졌다.
“아니, 저 녀석이 도망도 안 가네.”
같이 온 남자가 여자 하는 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거 국장님이 미인이라 그러는 거 아닙니까?”
또다른 남자가 말했다.
“착해라. 사람을 좋아하나봐요.”
여자가 소곤댔다. 가까이 온 여자가 나머지 손으로 캐슈넛을 하나 집더니 람지 코 앞에 내밀었다. 군침이 흘렀다. 람지는 얼른 앞발로 캐슈넛을 받아 입안에 쏙 넣었다.
“끼앗! 봤어요?”
신이 난 여자가 이번엔 아몬드를 집어들었다. 람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쓰며 아몬드도 얼른 집어먹었다.
“끼앗!”
여자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며 한 남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사진 찍어! 사진 찍어줘요!”
이정도면 됐잖아. 이정도면 됐어. 저 봉지 속에 아직 가득한 것들이 탐났지만, 람지는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뒤돌아 높은 나무로 기어 올라가버렸다.
“어어, 간다!”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람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목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사람들이 안 보일 때까지 꼼짝을 않고 나무 위에 앉아 기다렸다.
그무렵 뽀구리는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연못 작은 돌맹이 위에 상반신만 걸쳐놓고 수면에 비치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씩 발장구를 치며 잔잔한 연못에 물이랑을 일으켰다. 수면 위에 구름이 변해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던 뽀구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검고 작은 점이 꿈틀대고 있었다. 개미였다. 개미가 물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살려줘!”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연못 위에 드리운 나뭇가지 위에 또다른 개미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미다는 수영할 줄 몰라! 살려줘!”
뽀구리는 얼른 다가가 물에 빠진 개미를 건져 나뭇가지 위 친구들 곁에 놓아줬다.
물에 빠진 개미는 미다, 미다의 일행은 미가와 미나였다. 셋은 한 형제고 모든 일을 함께 해서 셋이 합쳐 미미미로 불린다 했다. 그날은 나무 열매를 먹으러 왔다가 그만 미다가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졌다고 한다. 뽀구리가 아니면 미미미는 미미가 될 뻔 했던 것이다. 미미미는 뽀구리가 고마워 어쩔 줄을 몰랐다. 생명을 살리다니! 뽀구리는 어딘지 위대해진 기분이 들었다. 넷은 금방 친구가 되었다.
미미미는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미미미가 뭔가를 말하는 지도 모르고 넘어가기가 십상이었다. 뽀구리는 첨벙첨벙 놀다가도 자주 미미미를 살폈다. “혹시 뭐라고 했어?” 그러면 미미미는 그동안 모았던 말들을 뽀구리에게 했다. 미미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미미미의 작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려왔다. 나뭇잎이 살랑 떨어지는 소리, 소금제비가 연못 위에서 걸어가는 소리,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다 뽀구리의 귀속을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