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9.06:00~10
어딘지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분명 단추가 부러져 있었고, 판매자는 언급하지 않은 하자인데도. 딱히 날을 세우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입어보니 소매 단추가 부러져있네요. 사전에 말씀이 없으셨는데..." 말줄임표를 섞어가며 말했으니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그런데도 그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옷이 맘에 들지 않은 건, 그 단추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판매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매가 길었다. 소매를 줄여서 입거나 입지 말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나는 부러진 단추를 발견한 것이다.
말간 세상을 떠올리면,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판매자는 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조금도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 집 근처까지 먼 길 찾아가 받아온 것인데도 네가 우리 동네 올 일 있으면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 동네에 갈 일이 없으니 착불 택배로 부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그럼 내가 네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하루 정도 지나며 생각해보았다. 기대했던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좋은 옷이었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했던 비어있는 색감, 브라운 계열이었다. 소매 길이만 줄인다면 여기저기 입기에 편안해 보였다. 두꺼운 코트라 내 손바느질로는 줄일 수 없지만 수선집에 맡기고 1~2만 원 정도 더 쓰면 될 일이었다. 판매자에게 말했다. 그냥 입겠다고. 그렇게 결정하고나니, 엉뚱하지만 말간 세상 앞에서 착한 웃음을 띄울 수 있다는 게 제일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