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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an 28. 2021

아이가 잠든 시간, 갈 곳이 있다는 것.

_ 엄마 아닌 내가 되어 앉는 자리


오후 3시,

점심 먹고 느지막이 둘째 아이가 낮잠에 드는 시간.

둘째 아이가 눈을 비비며 안방으로 향하는 이 시간은 첫째 아이도 종일 고대하는, 하루에 한 번 아이패드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게도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아이가 잠든 시간,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이렇게 기다려질 일인가.

엄마가 아닌 그냥 내가 되어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설렐 일인가.

엄마가 아닌 그냥 내가 되어 앉는 자리.

묵상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곳.


살금살금 방문을 닫고 나와 테이블 스탠드를 켠다.

겨우 두어 시간 남짓. 아이가 잠든 시간 동안 돌아갈 시계 초침보다 더 많이, 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나와 책상 위에 올려 두고서 마음은 이미 배가 부르다.

 

좋은 기분이 마음 구석구석 고르게 퍼져서 모자람 없이 채워지는 느낌.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었다. 볼 때마다 기억해야지. 잊지 말아야지.


백번의 글을 쓰고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려도

내게는 천 원짜리 한 장 생기지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설렘이

엄마가 아닌 그냥 내가 여전히 잘 살아 있음을 이렇게 선명하게 알게 해 준다.


사람에게

갈 곳이 있다는 것.

엄마 사람에게

그냥 제 모습으로 앉을자리가 있다는 것.

살아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다른 많은 이유가 없어도 충분한 답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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