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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16. 2021

주머니에서 장난감 주사기가 나오는 사람

첫째 아이가 30개월 때쯤 일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일이 있어 종종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저기서 내가 탈 버스가 오고 있었다. 버스 요금을 내야 하니까 주머니에서 뒤적뒤적 카드를 찾는데, 뭔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 만져진다. 이게 뭐지? 하고 꺼내 보는데 웬걸, 아이의 장난감 주사기가 나왔다. ‘에? 이게 왜 내 주머니에 들어가 있지? **가 넣었나?’ 하고 생각이 스치는데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키가 자그마한 아이가 널브러진 장난감 더미에서 이 주사기 하나를 손에 쥐고 옷방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하필 이 외투를 골라 더듬더듬 주머니를 찾아서 까치발을 살짝 들고 주먹 쥔 손으로 꾸깃꾸깃 주사기를 집어넣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거 너무 귀여운 과정에 결과가 아닌가, 교통카드를 찾는 엄마 손에 별안간 쥐어지는 장난감 주사기라니. 한 손에 장난감 주사기를 들고 카드를 찾아 찍고는 자리에 앉았는데 자꾸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실실 새서 누가 볼까 괜히 머쓱한 마음에 양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잡고 비비며 얼굴에 힘을 살짝 주고 웃음을 참았다.


너는 이런 장난감 주사기 하나로도 나를 이렇게 웃게 하는구나. 재주가 대단하지. 매력이 상당한 건가. 세상 어느 누가 이리 쉽게 내 마음을 녹이고 또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작은 틈새만 있으면 빛이 스미고 가랑비에 나도 모르게 옷이 젖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막을 방법 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알게 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저도 모르는 장난감 주사기가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는 사람이라니,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나. 자식은 부모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주는 건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가 묻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존재가. 아이가 주머니에 찔러 넣어 둔 장난감 주사기 하나에 모든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오래도록 내 존재와 가치를 여기저기서 부단히 찾아왔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시험 끝내고 받아 든 성적표 한 장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선생님이나 교수님 혹은 존경하는 윗사람의 인정에서, 사람들의 평가에서, 나를 좋아한다는 누군가의 고백에서, 내 직업과 그 일로 이룬 성취에서, 어떤 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거기에 내가 있는 것 같았고 계속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 거기 있는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았다. 때마다 대상과 방법이 달랐을 뿐 나는 늘 부지런히 나를 찾아왔다. 늘 내가 먼저 찾았다. 누가 내게 묻기 전에, 누가 알려주기 전에 먼저 내 존재를 찾았다. 나는 아마 불안했던 걸까. 내가 없을까 봐, 내 자리가 아닐까 봐,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봐. 어리고 젊은 날엔 누구나 조급하고 치기 어리다지만 그때 나에겐 그게 생존 같았다. 그래서 나를 찾았다.


무던히도 나를 찾던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이를 먹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서 있는 곳 어디서든 나를 찾다가 이제는 매일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종일 두 아이 먹이고 놀아주고 치우고 때마다 다른 요청사항을 들어주며 사고 친 뒷정리까지 하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상태가 될 때가 많다. 특히나 아이가 어릴 땐 체력도 정신력도 가끔씩은 마음까지 바닥이라 나를 생각하는데 가져다 쓸 만큼 여력이 남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나를 찾는 노력도 시간도 뜸해져 갔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어쩐지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처음엔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언젠가부터는 잊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가끔 울기도 했다. 오랜 시간 늘 내 가치와 이유를 물으며 살아왔는데 모든 게 송두리째 없어진 기분이 들어서. 아이와 만난 건 분명 기적이고 선물 같은 기쁨이었으나 엄마라는 이름과 역할에서 나를 찾기란 지금까지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처럼 살았다.


그러다 불현듯 주머니에서 나온 장난감 주사기 하나로 나를 다시 발견한다. 항상 나를 찾는, 언제나 내가 필요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아 나는, 이 작은 아이의 세상이 되었구나. 아이들과 지지고 볶느라 ‘나’로는 뭐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것 같은 날들을 보내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그러다 정말 잊어버렸나 싶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데 또 이렇게 선명하게 아이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내 인생에 나타난 이 작은 아이가 ‘엄마, 엄마는 지금 내 옆에 있어. 그리고 계속 내 옆에 있어야 하고 나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 말해주는 이 작은 아이 역시 저도 모르게 내가 오랫동안 던져 온 질문에 부족하지 않은 답이 되어있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굳이 애쓰지 않아도 찾을 수 있는 답.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 존재. 작은 네가 그걸 다 해줬다.


다듬어질 모서리가 여전히 많고 이기적인 사람인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헌신과 사랑의  이름에 나를  담지 못했다. 그건 지금도 내게 어려운 일이다. 아마  같은 사람은 평생 좋은 엄마가 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사실 내가 제일  안다. 그래도 이기적이고 건조했던  마음을 넓혀주고 네가 좋으면 나도 좋을  있구나.  진심으로 알게   너에게, 나는 오래도록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괜찮은 친구라도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언젠가 네가  길을 걸어 나서며 스스로를 찾는 질문을 던질  네가  답을 찾을 때까지 함께해주고 마음으로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런 마음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오래도록 노력해볼게. 고마워,  작은 꼬마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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