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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ul 21. 2021

너는 내가 아니다

“너도 나중에 너 같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


예전에 엄마가 나를 혼내며 하던 말이다. 내가 괘씸해서 나오는 멘트였으므로 당연히 좋은 의미의 ‘너 같음’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이 싫었다. 그건 혹시나 정말 그렇게 될까 봐 두려운 주문 같은 말이었다. 늘 많은 생각과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을 쓰고 사서 고민하며 나도 남도 괴롭게 하는 예민한 성정. 하필 닮아도 그런 걸 닮아서 미래의 내 아이가 나와 같은 경험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징그럽게 싫었다.


아이가 커가며 제 성향과 생각의 가닥이 조금씩 잡혀가기 시작하면서 이따금씩 아이를 혼낼 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에게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들이 보일 때였다. 예민해서 짜증이 쉽게 나고 뒤섞인 감정을 내려놓질 못해 서 오래도록 붙들고 힘들어하는, 엄마가 화나서 던졌던 그 말속에 ‘나 같은’ 모습들이 보일 때. 그럴 때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방어기제가 튀어나오듯 아이를 몰아세우거나 더 많이 다그치게 됐다. 나처럼 복잡한 생각과 감정의 타래를 잔뜩 안고서 힘들어할까 봐. 내가 그런다고 이미 나를 닮아 태어난 아이가 다른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외모와 성격, 체질 같은 것을 닮아 태어나고 함께 살아가며 습관이나 말투처럼 삶의 전반적인 것들도 닮아간다. 당연한 일이다. 부모와 자식이니까. 원한다고 맘대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어떤 부분을 얼마나 닮을지, 어떤 부분은 닮지 않을지 그것마저도 아무것도 정할 수 없는 권한 밖의 일이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잔정이 많고 눈물 많은 것이 닮았고 잘 웃고 웃음소리가 크고 장난기 있는 것도 닮았다. 걱정이 많고 우유부단한 부분이 비슷하고 부족하지만 정직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닮았다. 그런 것 말고도 책 읽기나 영화,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점도 닮았다. 안팎으로 크고 작게, 나는 엄마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아니다. 생각도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며 지금껏 살아온 시간도 다르다. 엄마와 나는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부모 자식 사이지만 그 사실을 빼고 나면 다른 점과 서로 이해 못할 부분이 더 많은 사이일지도 모른다. 부모라고 자식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자식도 부모를 다 알지 못한다. 자식은 부모의 많은 부분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인생,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전혀 다른 사람일 뿐이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엄마인 나의 많은 부분을 닮고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더라도 아이는 나와 다른 저만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갈 거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내가 사서 걱정할 이유도 미리 불안할 필요도 없는 거다. 설령 아이가 나를 닮은 어떤 점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게 되더라도 그건 아이가 스스로 넘어가야 할 언덕이다. 엄마라도 대신 걸어 줄 수 없는 길인 거다. 엄마의 어떤 점들을 나도 닮아 고민하며 힘든 시간을 겪기도 했겠지만 그걸 버티고 견디면서 때로는 인정하고 용서하면서 나로 만들어져 왔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솔직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나온 내가 싫지 않다. 그만큼 울기도 했고 용기를 냈고 묵묵히 버티기도 했던 시간을 알기에 나는 이만큼 걸어온 내가 고맙다. 그래서 아이도 그렇게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또다시 일어나 걸어가면서 자신으로 만들어져 갈거라 믿는다.


내가 괴로워했던, 나 자신과 때로는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했던 ‘나 같음’이 아이에게 보일 때 그래서 불안하고 화가 날 때, 나는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 ‘너는 내가 아니다, 내 아이지만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갈 거다.’ 그래, 맞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닮았어도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결정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거다.


다만 한 가지, 아이가 나와 닮은 그러나 동시에 유일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긍정하는 힘을 오래도록 마음 들여 키워가면 좋겠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던지 그 힘을 깊은 동력 삼아 살아가면 좋겠다. 우리는 많이 닮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네가 잊지 않았으면. 그래서 앞으로 네가 펼쳐갈 날들은 유일한 색으로 얼마든지 빛날 수 있다는 걸 네가 기억했으면. 너는 너로, 너만의 날들을 걸어가기를. 나도 다만 한 가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리고 너를 바라보며 우리를 건강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배워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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