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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an 05. 2024

도서관 옆 수영장

_ 엄마가 쓰는 겨울 방학 일기

1학년 첫째의 겨울 방학이 시작됐다. 무려, 장장 60일이다. (별안간 눈가가 촉촉해진다.) 60일이라고 하니 별생각 없다가도 뭐라도 계획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저절로 든다. 계획 없이 놀자니 아이의 시간이 킬링타임이 되는 것 같고 부족한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하면 지금 공부방도 꾸역꾸역 다니는 아이가 노발대발한다. 아이와 엄마가 합의 볼 수 있는 적절한 방학 계획 짜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전에 정해진 일정은 수요일 오전의 방과후 수업 하나, 주 4회 가는 공부방이 전부. 아무래도 이렇게는 안될 것 같아 틈틈이 특강이라도 시켜주려고 학교 도서관, 집 근처 도서관들, 센터들 방학 일정들을 모두 살펴봤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거나 신청 족족 광탈의 연속이었다. 부지런한 엄마들 세상에서 애들 강좌를 핸드폰 따위로 예약하려 한 대가다. 대학교 수강신청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로 미리 로그인해놓고 1초마다 새로고침하며 경건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느린 엄마는 또 배웠다.


이런 헐렁한 일정으로는 60일을 버틸 수 없어 뭔가 할만한 게 더 없을까 여러 날 고민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들어진 계획은 주 2,3회 첫째랑 같이 자유 수영 하고 바로 옆 도서관에서 책 보다 오기다. 연말에 책 사러 알라딘에 갔다가 자기 책 고르며 신나 하는 첫째를 보고 문득 책 읽기가 아이도 나도 모두 좋아하는 교집합 영역에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 생각했다. 60일이나 되는 긴 방학 동안 아이도 지루하지 않고 나도 지치지 않으려면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걸 같이 하면 되겠다고. 마침 우리 집 근처엔 도서관이 두 군데나 있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도세권 만세!) 그렇게 아이도 나도 좋아하는 것을 더 고민하다 생각난 것이 수영이었다. 수영은 평생 운동과 담쌓고 살아온 내가 재미있게 다닌 유일한 운동이다. 첫째는 지난여름 처음 수영을 배웠는데 체급 차이 한참 나는 형님들 사이에서도 가장 열정적으로 물에 뛰어드는 물속성 어린이였다. 자기 키보다 깊은 레일에서도 무서워하지 않아 3개월간 신나게 수영을 배웠다.(지금은 물이 춥다고 휴식기 돌입) 우리 둘 다 수영을 즐겁게 한 경험이 있기에 둘이 같이 자유 수영 다니면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방학을 잘 보내기 위해 아이에게만 초점을 두고 고민하다 아이와 내게 함께 할 것을 고민하니 생각보다 쉽게 방학 계획표를 채워갈 수 있었다.  


나는 이 방학 계획표에 도서관 옆 수영장이라고 쓰고 엄마가 쓰는 겨울 방학 일기로 채울 생각이다. 내심 첫째의 초등학교 1학년을 성의 있는 기록으로 남겨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이번엔 아이의 겨울 방학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하고 싶다. 이건 훌쩍 지나가버리는 아이의 시간을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남기는 기록이고 그 시간 속에 함께 있는 나를 남기는 기록이기도 할거다. 아이만을 위한 방학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방학이 우리에게 어떤 기록들을 남겨줄지 차곡차곡 쌓았다가 60일 뒤에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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