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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Nov 18. 2019

설마 내가 그럴 리가

네 번째, 서울살이 이야기

괴상한 경험을 한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로 머리를 감으려 고개를 숙이고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새벽에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물줄기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 얼굴 앞에 장막을 치자 갑갑함이 더욱 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최대한 머리를 돌려 얼굴이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도록 자세를 고쳐 머리를 감아야 했다. ‘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근이 우선이었다.    

 

다행인지 출근을 하고 일을 시작하자 새벽 내내 들었던 갑갑함과 불안함은 덜했다. 나는 더 이상 새벽과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퇴근을 하고 고시원 내 방으로 들어서자 ‘아, 이 느낌.’하고 새벽으로 되감기 되었다. 방 안에 들어오자 급격히 주위가 조용해지고 좁은 내 방은 더 좁게 느껴져 다시 갑갑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왜 이런 거지?’하는 불안함이 따라왔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속수무책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날도 잔뜩 불안함과 갑갑함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 당연히 곱게 잠들 수 없었다. 내내 뒤척이다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흘이 넘게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겠지?’하는 알량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어림없었다. 오히려 증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는데, 특히 일과가 모두 끝난 뒤 잠잘 시간에 유독 심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스트레스는 점차 심해졌다.     


이대로 영영 잠을 잘 수 없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처음엔 그저 숨을 못 쉴 것 같아 불편한 정도였는데 이제는 숨을 못 쉬어 이 상태로 잠들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숨이란 건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쉬는 것인데 나는 자꾸만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며 호흡을 골랐고 그 때문에 호흡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목은 점점 기도를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고, 잠들기 위해 눈을 감으면 눈앞이 꽉 막혀 갑갑했다. 어둠이 답답해 불은 당연히 끄지도 못했고 원래도 사계절 내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잠자리에 드는데 그마저도 거슬려 속옷 차림으로 잠들어야 했다. 닫힌 창문은 방을 점점 압축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능한 활짝 열었고 심할 경우엔 방문도 살짝 열어 놓거나 누웠다가 일어나 방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왔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살지 않는 게 낫겠다.’하는 허탈함과 자기 연민,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매일 우울했고 걷다가도 눈물이 났다. 지금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으면 좀 덜할까 싶어 친한 언니에게 요즘 나의 상태를 얘기했고, 내 얘기를 듣던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공황장애 증상이란 비슷한 것 같은데, 한번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의 말에 나는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나는 나의 상태가 ‘신체’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토요일이 되면 이비인후과를 가봐야 하나 싶어 알아보고 있었다.

두 번째, ‘공황장애’라는 걸 말로만 들어봤지 나와는 먼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TV를 보면 주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때문에 그것은 대중의 앞에 많이 서는, 평가를 많이 받는,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등등 나와는 조금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주로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언니의 말로 인해 나는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신체에 이상이 있으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어쩐지 금방 낫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평생 이러고 사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고민 속에 또 겨우 하루를 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딘지도 모르는 좁은 곳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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