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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Sep 12. 2019

다 돈 들여서 하는 건데

두 번째, 상사 이야기

초반에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지만, 출판사에 그럭저럭 두 달 정도 다니고 있었다. 그때쯤엔 출판사 블로그에 신작 소개 글을 쓰거나 책 뒤표지에 들어갈 내용을 적거나, 때론 작가가 쓰다가 힘들다고 포기해 버린 소설의 내용을 대신 채워 적는 일 등을 했다.


작가의 초고를 가장 먼저 본다는 게 그저 즐거울 줄 알았는데, 기본적인 스토리에 구멍이 생긴 소설부터 말도 안 되는 표현을 멋이라 생각하고 쓴 소설까지 있어서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발굴한 작가와 함께 성장할 기회가 있으니 나는 함께 일할 좋은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조아라며 네이버 웹소설이며 부단히 서치 했다.




그때쯤 한창 신작 이야기가 나왔었기에 나는 그날도 어느 웹소설 플랫폼에서 반짝이는 소설이 있는지 찾는 중이었다. 그래서 팀장 A와 팀원 B가 나를 부를 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신작 기획 회의인가?’하고 생각했다. 작은 회의실에 팀장 A와 팀원 B는 나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두 달 동안 두 사람과 이렇게 가까이 앉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조금 긴장됐다.


그렇게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팀장 A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일 하는 거 어때요?’라는 팀장 A의 물음에 나는 어련히 겸손을 담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처음보다 많이 적응한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팀장 A는 ‘안 그래도 어려워하는 것 같아 보이더라고요.’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팀장 A의 의중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헤헤’ 웃었다.


‘지야 씨, 이번 달까지만 일 해줘요.’ 치명타가 한방에 훅 들어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곧장 ‘네?’하고 되물으니 팀장 A는 내가 잘리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지야 씨가 일을 잘 못 따라가는 것 같고’, ‘우리 팀인데 다른 팀 하고 어울리고’, ‘신입인데 출근도 시간 맞춰서 하고’ 그 말에 내 머릿속엔 ‘대필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매번 둘만 붙어 다니니까 낄 틈이 없었던 건데!’, ‘출근 10시라며! 그리고 10분 전엔 도착했다고!’라는 대답이 떠올랐지만 결국 마지막은 ‘내가 잘못한 건가?’하는 자책이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두 사람 앞에 앉아 있는데 팀장 A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뒤늦게 말하는 것보단 이게 나을 것 같아서요. 회사도 다 돈 들여서 하는 건데 괜히 시간 끌 필요는 없고.’ 나는 앞에 들었던 다른 말보다 ‘돈 들여서 하는 건데 시간 끌 필요 없다’는 말이 가장 냉정하게 들렸다. ‘값어치 하지 못하는 것은 버려진다.’는 어쩌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는 흔한 일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학교를 갓 졸업한 나에겐 그런 물건 취급은 꽤 큰 상처로 남았다. 그런 내 마음을 팀장 A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사님께도 이미 말씀드렸어요. 이제 남은 기간만 하면 돼요.’라는, 내게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통보를 했다. 그 앞에서 결국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회의실을 나온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직원에게 잘렸다고 얘기했다. 동료 직원들은 내게 이런 회사 나가는 게 낫다라든가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위로해주었지만 내 입장에서 그들은 이곳에 살아남은 ‘승자’처럼 보였고 나는 ‘패자’였다. 그들의 위로에도 ‘어쨌든 잘린 건 잘린 거잖아···.’하며 자책했다.


그 날 퇴근길, 친구와의 통화에서 눈물 콧물 다 빼며 하늘에다 쌍욕을 날렸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서글프고 한심해서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 그간 팀장 A와 팀원 B가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다른 팀 팀장이 알려주었던 일부터 팀장 A와 팀원 B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던 섭섭한 일까지 다 토로했다. 그렇게 잔뜩 쏟아 내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퇴사를 앞둔 주, 팀장 A와 팀원 B가 나를 불러 이제 나가는데 점심이라도 한 끼같이 하자고 했다. ‘이렇게 같이 먹을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 같이 먹자고 좀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끝나는 마당에 뭐든 상관없었다. 함께 마주 앉아 냉면을 먹으며 팀장 A는 이제 나가면 뭐할 거냐는 형식적인 질문을 했고, 나는 생각해 봐야 한다는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회사를 나왔다.




인생은 단짠단짠. 내 첫 회사생활은 짠내 나게 끝나고 말았다. 업무도 팀원과의 관계도 모두 서툴렀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렇게 끝난 게 다행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허망하게 첫 회사생활을 끝내고 나는 나에 대해 좀 더 탐구했고,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추진력을 장착할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든 싫은 경험이든 어찌 되었든 나의 다음을 위한 토대가 된 건 확실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물건 취급하던 팀장 A와 팀원 B를 우연이라도 다시 만났을 때 웃으며 인사할 마음은 아마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사 보니 별로라 버려진 장난감이 된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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