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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Mar 01. 2023

나의 자화상은 글로 된 뭉텅이들

[감상]

감상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앉는다. 그런데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 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펼쳐진 다이어리 속에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데 그저 펼치기만 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바빠야 할 것만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으니 더 괴롭다. 생각을 주체할 수 없다. 이래서 쉴 틈을 주면 안 되는 건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어디라도 나서야 한다. 나는 그럴 때면 카페로 향한다. 와글거리는 카페의 한 귀퉁이에 앉아 더도 덜도 없이 노트 한 페이지, 펜 하나 꺼낸다. 아이스커피 한 모금으로 시동을 건다. 그리고 쓴다. 끊임없고, 두서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쓰는 행위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나는 특히 무지막지 떠오르는 잡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만족한다. 어떻게 하냐면 진짜 일단 냅다 쓰는 거다. 빈 종이의 열과 행은 무시하고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며 대각선으로도 쓰고 거꾸로도 쓴다. 그림도 그려본다. 갑자기 사람 얼굴도 그렸다가 아침 먹고 땡- 하며 해골도 그렸다가 구름도 그리고 입체 글자도 그린다. 그러다 다시 떠오르는 것들을 쓴다. 잠 온다, 배고프다, 같은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도 쓴다. 그러다 보면 종이가 가득 찬다. 다음페이지. 다시 반복한다. 운이 좋으면 번뜩!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른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펴서 그 아이디어와 관련한 계획이나 생각 등 여러 가지를 또 쓴다. 그러다 발견하는 설레는 마음과 피어나는 희망 같은 것을 가지고 마침내 그 자리를 뜨는 거다. 이걸로 며칠은 바쁠 테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또 그런 날이 오면 또 쓴다. 반복. 


시간이 지나고 무작정 쓴 뭉텅이를 들여다본다. 분명 내가 쓴 건데 못 알아보겠는 글자도 있고 그때는 좋은 생각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은 것도 있다. 그렇게 찬찬히 훑어보고 평가하고 와닿는 것을 다시 정리한다. 그러니까 작가의 의도를 해석해 보는 거다. 당시의 나를 감상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도 있지만, 그때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은 맞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다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그리고 또 다를 것이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다름과 변화를 인정한다. 아,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지만, 지금은 다른걸- 하고 말이다. 운이 좋으면 그때는 무심코 넘긴 것들이 지금에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타이밍을 맞춰 발견되는 어떤 것을 보면 그렇게 짜릿하다. 글로 된 자화상은 그렇게 탄생한다. 


나를 감상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글로 된 나를 감상하는 게 제일 재밌다. 글은 정말 날것의 나를 드러내기 쉽다.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생생하기도 한 것이 글이다. 만일, 생각이 어지러워 도무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써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나를 확인하고 돌아본다. 그때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당시의 나의 의도를 지금의 내가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를 감상한다. 그러면 나랑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아마도, 어쩌면, 나는 지겹고 괴로 이 삶을 좀 더 버텨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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