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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Feb 22. 2023

저는 모델입니다. 근데 이제 동네를 무대로 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모델 도전기 / 모델을 도전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177로 사는 삶

그렇다. 남자 평균키 172.5 cm, 여자 평균키 159.6cm(2022년 기준)인 대한민국에서 20대 중반의 여성으로서 177cm의 키로 살아간다는 건 꽤 고달프다. 이름보다 키를 묻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다.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두 개인데 하나는 "혹시 운동 같은 거 하셨어요? 농구나 배구 같은..."이고 다른 하나는 "모델하셔도 되겠어요."다. 어릴 때부터 듣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갔다. 운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나의 선택은 당연했다. 직업마다 듣자마자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면, 나에게 모델은 한 장면 속의 주인공이었다. 온갖 플래시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주인공. 그래서 하고 싶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교 2학년. 그렇게 꿈을 키웠다. 


저는 모델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모델을 하기 위해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했다. 키, 체형, 그리고 돈. 키나 체형은 업계의 기준이 있었다. 키는 얼추 맞았는데 체형은 살을 더 빼야 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보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돈. 항상 돈이 문제다. 모델을 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를 수료해야 했다. 그거 그냥 걸으면 되지 뭘 돈을 주고 워킹을 배우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걷는 법, 도는 법, 포즈를 하는 법 까지 다 배워야 한다. 그럼 어딜 가야 배울 수 있냐, 바로 학원이다. 모델학원. 에스팀, 와이지 케이플러스 등 유명 모델 에이전시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아카데미 수료를 하고 오디션을 보고, 합격을 하면 소속 모델로 활동할 수 있다. 그러면 아무래도 런웨이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그러나 나는 다닐 수 없었다. 당시엔 지방에는 그런 학원이 없었고 그렇다고 서울에서 방을 잡아서 아카데미를 다니며 모델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가정형편이 아니었다. 또, 모델이라는 직업이라는 게 무리해서 투자를 했다고 해서 바로 데뷔하자마자 돈을 와장창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가 뭐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매한 재능은 훨씬 끈질기다. 적은 가능성과 희망 하나가 너무 달콤하다. 그래서 질척거리게 된다. 미련이 왕성하다. 오디션이 가끔 열렸다. 보통 하루동안 워킹을 배우고 난 후 오디션을 본다. 합격하면 아카데미 장학생으로 무료로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숱하게 탈락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입시를 앞두게 된다. 오디션은 계속 떨어지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살은 계속 쪘다. 이제는 진짜 능력도, 재능도 없는데 억지로 꾸는 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스무 살, 어째 저째 간 대학이 너무 안 맞았다. 자퇴를 고민하다 우선 휴학을 해봐라는 엄마의 제안에 1학년 2학기에 휴학을 했다. 갑자기 생긴 1년에 뭐 할까 싶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시리얼, 식빵 두 조각, 요구르트 같은 것만 먹으며 10kg 넘게 감량했다. 그렇게 다시 오디션을 지원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포기도 아니었다. 그냥 피했다. TV를 돌리다 모델이 출연하면 채널을 돌릴정도였다. 관련된 모든 소식과 정보를 끊어내려 노력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며 모델을 도전할 수 있는 껀덕지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실, 혹시 몰라- 하며 지원한 오디션에서 서류를 합격하면서 아! 나 아직 하고 싶은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탈락. 그럼 그렇지... 하다가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며 자꾸자꾸 여러 가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아카데미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모델 클래스를 발견했다. 한 달 동안 워킹을 배우고 난 후 작은 패션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에 바로 지원, 그리고 첫 수업.  워킹을 배우고 리허설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정말 작은 패션쇼였지만 꽤 행복했다. 아 이래서 내가 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했다. 그 와중에 오디션 보러 다니며 배운 워킹이 녹슬지 않았는지 단번에 선생님 눈에 들었다.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선생님이었다. 클래스 수료날, 나에게 다가온 선생님이 명함을 주시며 "너는 다른 거 하지 말고 모델을 해라-" 하셨다. 그 한 문장에 눈물이 날 뻔했다. 

당시 클래스를 들으며 스토리에 남겼던 말. 진짜 행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진짜 이번엔 나 될 수 있나? 그런데 아니었다.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참 어이가 없었다. 막상 눈앞에 원하던 꿈이 있었는데 망설여지다니. 당시엔 정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겁이 났던 것 같다. 선택의 책임을 오롯이 내가 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만약 내가 모델이 됐는데 돈을 못 벌면? 하기 싫어지면? 나는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그때 다른 걸 하기에 늦어버린 게 아닐까?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당시 편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더랬다. 당시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엄청나게 늦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안정적인 삶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모델이라는 직업은 리스크가 컸다. 부모님의 반대를 핑계로 결국 한 때의 추억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래, 나 모델입니다. 근데 이제 동네를 무대로 하는

편입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나름 사회인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딱히 안정적인 삶을 찾아나간 것도 아니었다. 뭔가 확실한 직업을 찾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온 마음과 노력을 쏟았던 꿈으로부터 도망친 내가 미웠던 적도 있었다. 그럴 거면 잘 살아내기라도 하지. 이게 뭐냐! 친구들과 술 마시며 친구들이 모델은 이제 끝이야? 물으면 에이- 이제 늦었지, 하며 잔을 부딪히면서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아리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플래카드 하나가 걸렸다. 시민 모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요동쳤다. 아, 나 하고 싶네. 친구에게 서류지원할 사진을 부탁하며 말했다. 나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려고....! 현장에 갔더니 정말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 했다. 나이가 많아서 늦었어,라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었다. 열정의 현장에서 나는 많은 감정을 겪었다. 나는 워킹을 하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거지, 무대는 중요치 않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많은 조명이 아니라 단 하나의 조명 앞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무대다. 정말 상투적이지만 또 그만큼 확실한 표현도 없는 듯하다. 대회에서 베스트 시민상을 수상하며 십여 년 동안 지녀온 런웨이 위의 모델이라는 꿈을 마무리 지었고 다시 시작했다. 


모델, 그 매력이란

오랜 시간 미련이 남을 만큼, 겁 많은 내가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게 만들 만큼 나에게 모델이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모델의 언어는 표정, 몸짓, 손 끝, 발끝이다. 또한, 사실 주인공이 아니지만 주인공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실 상업 패션화보나 런웨이 위에서는 모델이 튀어서는 안 된다. 모델이 걸친 화장, 옷, 장신구, 헤어가 빛나야 한다. 사실 모델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빛나도록 하는 서브에 가깝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고 갈망하는 이유는 무대 위의 짜릿함과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결심했다.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한 함께해 보겠다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일반인모델, #스냅모델 #프리랜서모델로 해시태그도 야무지게 달아서 말이다. 포트폴리오도 찬찬히 만들어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순간이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임하리! 하고 말이다. 꿈을 꾸고 좌절하고 도망치고 다시 도전하며 결국 어떤 형태로든 지켜낸 이 매력적이면서도 애증의 관계를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여러분도 모델, 할 수 있습니다!

모델 활동의 경우 런웨이, 패션화보, 스냅 모델로 나뉠 것 같은데요. 각자 지원하는 방법도, 되는 방법도 정말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보가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정보를 얻었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서 주최하는지, 어느 회사인지, 어떤 목적의 행사인지에 따라 나이나 키 제한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정보를 찾아보시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1. 블로그 및 카페 검색 / 동호회 등 소셜 모임 활동

저는 어떤 것이든 후기를 읽는 걸 좋아해요.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보면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또한, 카페는 가입하지 않아도 어떤 공고가 올라오고 어떤 모델을 원하는지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대략 살펴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엔 소셜링 문화가 발달해서 사진을 찍는 동호회나 소모임도 있답니다. 그런 모임은 서로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고 작가가 되어주기도 해요. 요즘엔 일반인이지만 정말 대단한 모델이나 작가 실력을 가진 분들이 많답니다! '문토', '소모임'과 같은 어플을 통해 찾을 수도 있고 카페나 인스타그램으로 찾을 수도 있어요. 


2.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 및 팔로우

인스타그램은 정말 정보의 바다입니다. 오디션 공고는 인스타그램에서 제일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대학 졸업 패션쇼 모델 오디션부터 디자이너 패션쇼까지요! 유명 모델 에이전시, 이를테면 케이플러스 아카데미 같은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면 오디션 정보가 뜨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지원할 수 있겠죠? 일반인모델, 스냅모델, 상호무페이 등 다양한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세요. 자신이 사는 지역을 넣어 00 모델로도 찾아보시고요. 어떤 사람들이 활동하는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을 거예요. 해시태그를 달고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만들어나간다면 섭외콜이 올 수 도 있을 거예요. 실제로 그런 모델들도 있으니까요!


3. 클래스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자!

저는 상상유니브의 모델 클래스를 수강했어요. 상상유니브의 클래스는 유명하죠? 대학생 분들이라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클래스랍니다! 지난 기수의 후기나 지난 활동을 찾아보고 자기에게 맞는 클래스를 신청하면 될 것 같아요. 또한, 패션의 경우 서울에서는 아주 큰 패션쇼를 열고 오디션도 열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꼭 확인해 보세요. 에이전시 원데이 클래스의 경우 장학금의 혜택과 전속모델 기회도 주어지지만, 더 중요한 건 워킹을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워킹은 배움의 길이보단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루라도 배워보신 후에 연습을 통해 워킹 실력을 기를 수도 있을 거예요.


4. 모델은 자신감!

나이도 걱정이고 키도 걱정이고 나는 정말 자질이 없는 것 같아ㅠ라고 생각하신다면 노노! 요즘은 시니어 모델반이 따로 생길 정도로 시니어 모델 분들의 열정도 대단하시고 체형과 키에 따라 다양한 모델이 활동하고 있어요. 세상의 기준은 정말 다양하고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히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어요. 나 안될 것 같아,라는 생각으로 지원부터 포기하기보다는 일단 지원해 보고! 오디션 경험도 쌓아보면서 부족한 부분은 개선하고 장점을 더욱 발전해 나간다면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5. 많이 보고 많이 찍히자

모델은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이다 보니 카메라 속의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많이 찍혀보면서 어떤 표정이나 포즈가 제일 예쁘게 담기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겠어요. 그리고 패션쇼는 직접 현장에 가지 않아도 영상을 볼 수 있답니다! 영상으로 모델의 워킹이나 표정을 분석해 보고 연습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워킹은 쇼마다, 의상마다, 디자이너마다 정말 박자나 느낌이 정말 다르거든요.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꿈은 어디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몰라요. 어떤 모습이든 여러분의 꿈을 응원할게요. 우리 함께 힘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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