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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Mar 15. 2023

방랑자로 살겠노라, 했는데 남은 건 방황뿐

거처 없이 떠도는 고민들

방랑 :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방황 :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요즘 들어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에는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심지어는 주위에 길을 물을 사람도 없이 낙오되어 있다. 더 문제는 목적지도 없다는 거다. 어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일단 앞으로만 가고 있다. 아니 뒤인가? 사실 모르겠다. 그저 걸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뭔가는 하는데 도무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맘고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 헤맸다. 책을 읽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란다. 운동하고 밖을 나가란다. 둘 다 하고 있는데... 딱히.... 그럼 패스, 동기부여를 위해 유튜브를 좀 찾아봤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참 많다. 쓸데없이 자기 비하만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이 고민을 나누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없다.


외로운 방랑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잘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흐릿하지만 대부분의 것을 혼자 하거나 또는 동생을 챙기며 살았다. K장녀로서 갖춰야 할 독립성이 너무 충만했다고나 할까. 부모님의 신뢰도 높았다. 너는 혼자 잘하니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컸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꽤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너무 힘들었다. 나는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렇고, 혹여 생기는 후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그래서 주로 우울했고 때로 행복했다.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합리화를 만들었다. 최근에 이 모든 감정이 파도쳤다. 나는 사실 혼자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나약하고 한참은 모자란 사람인데 그걸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압도했다. 동시에 자유로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사는 삶이 너무 좋다. 미친다. 이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는데. 


남은 건 방황뿐..?

그래서 챗GPT에게 물었다. 어떻게 질문하는가에 따라 얻어가는 답 퀄리티가 달라진다고 하던데. 큰일 났다. 나는 이제 질문도 못하겠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답을 주려 노력하는 AI를 보면서 아주 당연한 말을 촤르륵 뽑아내는 기술에 감탄했다. AI에게나 묻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슬프기도 하고 말이다. 내 방랑의 종착은 결국 방황이구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헤매고야 마는 내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작은 기대가 있는 이유는 지금 이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묻든 읽든 찾든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작은 기대에 기대어 그냥 오늘을 살겠다. 방황하지 않는 방랑자로 살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그리고 언젠가 다시 길을 잃을 땐 물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았기를 바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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