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돌고 돈다
요즘 자주 보는 ‘싱어게인’이라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제목을 아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양한 이유로 대중 앞에 서지 못했던 가수들에게 새롭게 도전하고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어서 자주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싱어게인’ 참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는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이 던진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라는 말이다. 예전에 본인이 디자인했으나 너무 시대를 앞서간(?) 나머지 크게 성공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때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한다. 예전에 디자인관련해서 연락을 주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요즘 종종 거래처에서 아직도 제품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연락이 온다고 한다. 지금은 현업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자연과 함께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재야의 고수이지만 최근에 변화를 가져보고 싶어서 20Kg 넘게 감량도 하고 있다고 했다. 삶의 변화와 더불어 자신을 둘러싼 많은 변화들에 적응하며 새롭게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싱어게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이 형에게는 ‘패션어게인’ 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는 밝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 트렌드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도 있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패션산업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분야의 노력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패션산업이 잘 되고 있는 반면에 패션산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소재와 봉제 등 패션제조 부분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패션제조 분야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연령이 높아지고 제조 원가는 상승하고 있으며 각종 시설의 노후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한국의 패션제조 분야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제일 큰 어려움이 바로 해당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충원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젊은 사람들이 패션봉제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원단을 제직 하는 공장이나 염색을 하는 공장에 가보면 대부분의 근로자 연령이 평균 50대가 넘는다. 일부 젊은 근로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봉제 공장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환갑을 넘긴 미싱사들이 수두룩(?)하다. 패션 봉제 분야 중소기업은 운영하는 경영자도 근로자도 모두 나이가 들어 새로운 시설투자 또는 새로운 봉제방법의 시도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내수 경기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라서 더욱 소극적인 경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최근에는 사업을 접는 공장도 종종 생기기도 했다.
요즘 주변에 보면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현역에서 물러나 있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많다. 한때는 그 도도함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실장이나 팀장이었던 사람들이다. 화려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시즌 매출을 책임지고, 숫자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의류를 기획하고 만들어서 판매를 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회의 때나 외근 때 옆에 같이 있기도 겁났던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사람들을 최근에는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동종 패션업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현업에서 잠시 떠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냥 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가끔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패션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가 많아서 또는 직급이 높거나 연봉이 높아서 아니면 이제 트렌드를 못 따라갈 것이라는 우려 등을 이유로 그들은 이제 현업에서 떠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여지없이 각자의 한창때(?)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담당했던 직무나 직종에 관계없이 다들 화려했던 라테(?) 이야기를 한다. 예전 잘 나갈 때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 한잔씩 마시고는 한다. 비록 지금은 해당 직무의 일을 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때 자신이 열정을 다해서 했던 일을 다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싱어게인’처럼 ‘패션어게인’을 만들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아직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선배들처럼 현업을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도 ‘패션어게인’을 꿈꾸며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될지 궁금한 휴일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