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잉. 도서관에서 밀린 일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02로 시작하는 번호였지만 물도 마실 겸 받기 버튼을 누르고 복도로 나왔다.
"00 상조 000 팀장입니다. 좋은 내용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중략 - 할인도 많이 된 금액이고 매 달 만 오천씩 내면 상조 준비 끝입니다. 그때 닥쳐서 하려고 하면 정신이 없으니 미리 준비해 두세요!"
전화를 끊고 마침 통화 속 상조회사 디자인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 오랜만에 톡을 보내보았다.
"00야 잘 지내지~? 혹시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괜찮은 걸까?"
"아 그 상품이구나? 너희 장지 이동할 때 멀리 갈 예정이야...? 만약에 이동거리가 좀 있을 거면 버스가 전국 무료인 상품이 나을 거야. 그리고 상례사 수가 좀 차이 나는데 그건 나중에 추가도 되니까. 잘 생각해 봐."
"아... "
친구는 내 기대보다 더 자세한 답을 해줬다. 그리고 답변 속 작은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장지...? 상례사 추가...?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어렴풋이 엄마가 나는 화장하기 싫다는 (뜨거울 것 같다고) 얘기는 들은 것도 같은데.... 우선 고맙다는 이야기와 8월에 친구들과 꼭 한번 보자는 답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내 나이 벌써 40을 넘겼고 부모님은 70살이 다 되셨는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또 막상 생각하려고 하니 하고 싶지가 않다.) 너무 당연하게 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한 존재가 곁을 떠난다? 과거에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던가? 가장 먼저 20대에 키웠던 강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내 생에 첫 반려견. 1년은 내가 키웠고 할머니 댁에서 몇 년을 더 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상실감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루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네."
그 짧은 문장을 들었을 떄 처음 경험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라는 말을. 아. 이런 걸 그렇게 표현하는구나. 정말 짧은 시간에 다루와 (내가 키웠던 강아지, 비글) 지냈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가 눈물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꼈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슬픔을 걷어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많이 아프셨고 다루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모든 가족들이 할머니를 곁을 지켰고 한참을 숨죽여 심박수 모니터 기계과 할머니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그 경계를 오고 가는 것을 직접 보았던 순간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병원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좀 다른 느낌이 있다.) 의사 선생님께서 덤덤하게 날짜와 시간을 말하며 죽음이라는 선고를 내리던 그 찰나에도 할머니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다시 봐도 잠깐 곤히 잠이 든 것 같은데... 여러 명의 울부짖는 울음소리로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리란 걸 실감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 당장 죽는다해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아직은 어린 딸들. 내가 없어도 괜찮을 때 그때쯤 가면 좋을 텐데... 물론 그럴 때가 올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죽음이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더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안위와 걱정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상조에 가입하거나 남은 이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 아닐까. 가수 매드클라운의 죽지마 라는 노래 가사 중 와닿는 부분이 있다.
"아무것도 아냐. 지나가면 진짜 아무것도 아냐. 여기 있는 사람들 백 년 뒤면 다 사라져"
100년도 안되는 시간을 아둥바둥 살고싶지 않다. 매일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좋은 시간을 쌓아가고 싶다. 40대. 아직은 먼 이야기 같지만 죽음을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