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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보다 낮술 Aug 15. 2017

익명의 거리, 뉴욕에서 일주일 #23

윌리엄스버그의  일몰

<윌리엄스버그, 2015>


윌리엄스버그 거리를 걷다가 눈길조차 주지 않는 도도한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그리고 우연히 그 프레임 안에 들어온 곰인형과 푸우 인형.

버려졌지만 둘이라서 외롭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멋진 고양이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때는.










<윌리엄스버그, 2016>


브루클린 브루어리를 나와서 가볍게 걷다가 익숙한 포즈로 함께있는 곰인형을 발견하고는 작년에 걷던 그 길이란 것을 깨달았다.

1년 만의 해후랄까?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된 모습을 보고는,

'뭐지? 쓰레기 통 옆인데 1년이 지나도록 저걸 치우지 않았다는 건가? 정말 무심한 브루클린이구나'

'아니면 인형을 버린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당신이 얼마나 냉혈한인지 느끼라고 저주라도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윌리엄스버그, 2016>


안쓰러운 마음에 다가가서 보니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푸우가 쓰고 있던 모자가 곰돌이에게 써져 있고, 곰돌이 목에는 빨간 리본도 새로 둘러져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받고, 불필요에 의해서 버려졌지만,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었구나'


유행에 따라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뉴욕의 모습이지만, 사람의 정은 쉽게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버려졌지만, 잊혀진건 아니었어'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짙은 에일 향과, 토비의 고소한 원두 향이 옷깃에서 희미해질 때쯤, 어느덧 윌리엄스버그의 해도 내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저 해를 놓치면 분명히 후회하게 되겠지..."










여유로워 보이는 일요일이지만, 해를 따라 어딘가 재촉하는 듯한 발걸음들이 브루클린의 오후를 왠지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브루클린을 떠나는 해를 따라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윌리엄스버그 브릿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브루클린 바이크 파크.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로 묘기를 부리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어느새 땅거미가 깔린다.












어두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맨해튼의 불빛,

반대편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공원의 적막함은 묘한 분리감을 느끼게 한다.

어디에 있든 그것은 나이며, 어디에 있든 그것은 내가 아니다.

어디에서든 이방인이 아니었던 적이 있을까?

누구나 이곳에서는 이방인.


곰인형에게서 느낀 감정이 불빛처럼 밝아오지만,

이방인의 적막함은 어쩔 수 없었다.










쓸쓸한 브루클린의 블루.

반대편의 화려함과는 다른 차가움이 있다.

그 차가움마저 감미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방인의 특권이겠지.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다시 맨하튼으로...












































Leica M9 / Leica M-Monochrom / 28mm Ricoh GR Lens f2.8 / 35mm Summilux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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