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후에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들어가다
베트남 후에
정어리떼 속의 나
자전거를 빌려서 동네를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자전거를 타서 돌아다녔던 경험이 좋았기 때문이다. 저렴하고, 가고 싶은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다른 낯선 모습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전거도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도로를 달린다는 것. 그것도 한쪽 구석에서 죄인처럼 찌그러져서 가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도로 한가운데를 달렸다. 처음에는 무척 두려웠다. 거친 엔진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들과 뒤섞여서 간다는 것이. 하지만 뭐든 경험하고 적응하자는 것이 내 철학이라 해보기로 했다. 나는 나의 속도를 꾸준하게 유지한 채 이들과 섞였다. 결코 나대지도 않고, 그렇다고 앞지르지도 않았다. 사회를 산다는 것이 이런 걸까. 나대지 않고 남들과 발맞춰서 가는 것. 아무도 나를 받아버리거나, 꺼져버리라는 욕설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정어리 떼 속에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인도가 아닌 도로를 달리는 게 두려웠지만 금방 적응되었다. 하지만 적응하기 힘들었던 거 한 가지는 이들의 교통체계였다. 좌 보호, 우 보호 신호도 없었다. 동시에 좌우, 앞뒤로 막 오토바이가 뒤섞였다. 교차로에서 말이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상대를 피하며 자기 갈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기준과 체계가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이 규범화되지 않았을 뿐. 상대를 피하고, 내 갈 길을 간다.
정어리 떼처럼 보이는 이들은 모두 자기 갈 길을 가기 위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뿐이었다. 사회에 순응하는 척 내부로 들어갔다가, 나만의 길을 가면 되는 것. 사는 게 모두 이와 같다는 하나의 깨달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한다. 모난 돌이지만 생존하는 법은 있는 법. 일본의 명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특출나게 모난 돌이었지만 아주 강한 적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누르고 일본을 통일했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두 인물에게 자신이 모난 돌이 아님을, 위협적인 세력이 아님을 보여주었기 때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고개를 숙여 2인자를 자청했고, 눈에 띄지 않을 변방에 터(지금의 도쿄, 당시의 에도)를 잡아 세력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명언 중에 <인내는 무사 장구의 근본이고, 분노는 적이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오히려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다>가 인상 깊다.
오토바이 행렬 속에 들어가 그들보다 느릿느릿 페달을 밟아 도로를 달리며 별 생각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