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의 성장
호찌민에 거주 중인 친구가 있어서 도착한 저녁 함께 볶음밥, 구운 새우, 스프링롤을 먹었다. 호찌민에 도착하는 버스가 예정보다 늦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게다가 와이파이가 된다고 했던 버스에서 와이파이를 제공해주지 않는 바람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정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상대방은 이미 약속 시간에 맞춰서 나오고 있을 시간인데. 한국이라면 뭐든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외국에 오면 어려웠다.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른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로 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I arrive! I am going! 한글 자판이 되질 않으니 별 수 없었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퇴근하고 피곤했을 친구는 나를 기다리느라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나는 당시 이 친구가 원래 화가 없는 친구인데,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베트남이 이 친구를 망쳐놨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에 거주하든 몰디브에서 거주를 하든, 약속 시간 1시간 30분을 넘기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을 자는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달래주고자, 부모님에게 주려던 펜던트와 팔찌를 선물로 주었다. 올드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태국에서 사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태국에서 사 온 건 사실이었지만.) 그 친구는 곧 즐거움을 되찾았다. 역시 선물만 한 게 없다.
친구와 나는 둘째 날에도 만났다. 함께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난 고수가 참 좋다. 고수를 국수면 만큼 넣어서 먹었다. 고수를 먹으면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한약 종류의 냄새도 좋아한다. 고수는 약초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좋다. 언제부터인가 몸에 좋은 건 챙겨서 먹게 되었다. 약간의 정신적 예민함이 있어서 매일 몸보다 정신이 먼저 지쳤다. 정신이 지치면 곧 몸이 지친다. 그래서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요즘 성격이 지랄 같다고. 그랬더니 친구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거라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아주 쿨한 대답이었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공황장애, 신경쇠약 뭐 이런 것들은 다 그렇게 생겨 먹게 태어난 탓이다. 땀이 질질 흐르고 호흡이 가빠도, 안 죽으니까 걱정 말고 생겨먹은 대로 쿨하게 살자.
호찌민에 와보니, 베트남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건물이 올라가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거리에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활기를 너머 분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양면성이 있는 법이다. 일지를 쓰는 노트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다시 주웠을 땐 매연이나 먼지로 표지가 시커멓게 변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도로 배수구 근처엔 오물과 시꺼먼 액체들,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도로에서 벗어난 여행자 거리라든지, 골목은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장을 보거나 낮잠을 자는 시민들이 보였다. 여행자 거리에서 마주친 여자에게 사진 한 컷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전단지를 돌리던 여자였는데, 웃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 하나 남기고 싶었다. 흔쾌히 찍어도 좋다고 포즈를 잡는데, 프로 같았다. 3컷 정도 찍었는데, 표정이 자연스럽고 카메라 앞에서 주늑이 든 모습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자세를 잡으며 표정도 다양하게 해 주어서 찍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따로 이메일 주소를 받지 못해서(당시에 굉장한 용기를 내어 물어봤기 때문에, 이메일을 물을 경황이 없었다), 사진을 넘겨줄 수 없었다.
베트남 호찌민은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잘 웃는다. 하지만 도심으로 나가면 전쟁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오토바이 행렬 앞에서 주눅이 들 정도다. 또 방문하게 된다면 아마도 급변한 베트남을 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