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놈아
출근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삑삑삑삑, 주기적이고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어디 아픈 걸까? 뒷문이 열릴 때마다 토해내는 기계음. 삑삑삑삑.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딱 좋은 소리였다. 뒷문 언저리에 가시라도 걸린 게지. 그러니까 문을 열 때마다 꽥꽥 울어대는 거야.
물론 나의 차가운 이성은 알고 있었다. 보나 마나 승객의 안전을 위한 처사라는 것을. 하지만 나의 여린 감성은 새된 기계음을 버틸 수 없었다. 시커먼 다크서클이 불도그처럼 늘어졌다.
하지만 소리는 이제 시작이라며 내 목덜미를 물어왔다.
오늘의 42번 버스는 무슨 만남의 장소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헐렁한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부터 한 짐씩 지고 있는 할머니까지 막 들어차는 게 아닌가? 쇄골을 타고 오르는 온도, 패딩 품에서 폭삭 거리는 냄새, 버스는 금세 끓어올랐다. 사람이 모인 곳은 시끄러워지는 게 인지상정. 통화든 대화든 그들이 나누는 한마디는 버스의 소란이 되어 웅성거렸다. 삑삑거리는 기계음과 뿅뿅거리는 게임음, 친구를 부르는 욕설과 관절의 아픔을 토로하는 한탄까지. 날 덮쳐오는 소리 속의 나는 샌드위치 속의 눅눅한 토마토였다. 읽던 책은 덮은 지 오래였으며, 짜증이라도 풀어보고자 꺼낸 노트엔 뱅글뱅글 소용돌이치는 볼펜 구름뿐만 몽실거렸다. 더군다나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에게 자리까지 양보하고 나니 아수라장도 이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이리 밀쳐지고 저리 밀쳐지며 케첩이 되어가는 나. 키는 뭐 하러 이렇게 커서 다양한 정수리 냄새를 맡아야 하는지…. 본디 42번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려던 나는 버스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고통을 견뎌 훌륭한 케첩이 되느니 비겁한 인간으로 환승하리라. 환승 정류장까지는 세 정류장이 남아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세 정류장이었다. 차가 좀 막히나? 나는 무수한 정수리들을 해치며 버스 앞창을 바라보았다. 도로 가득히 들어찬 자동차들은 마치 시리얼 같았다. 막히는구나…. 나에게 여유로운 출근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찌질한 처절함이 짜증으로 번져 올랐다. 손에 잡히는 걸 마구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환승을 기다렸다. (사실 겁쟁이에 마음이 여려 던져보라고 해도 못합니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삑삑삑삑.
버스에서 내리며 토해낸 것은 한숨 대신 X욕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후, 하, 후, 하. 호흡과 동시에 감정을 골라내며, 겨우 다음 버스에 올랐다. 환승한 버스는 널찍했다. 나는 편안히 앉아갈 수 있었다.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 버스도 감염체였다. 삑삑삑삑 삑삑삑삑 삑삑삑삑 그 후로도 열 정류장을 이 소리와 함께 가야만 했다.
“아….”
터져 나온 한숨. 짜증이 나다 못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터질 것 같은 머리와 이미 터진 평온에 갈리지도 않는 이빨만 바득바득 갈아댔다.
‘십 분만, 십 분만 더….’
나는 그 뒤로 족히 다섯 번은 더 그 괴음을 듣고서야 버스를 내릴 수 있었다. 눈은 이미 퀭, 어깨는 이미 축 늘어졌다. 버스 안에 숨어있던 할리우드 전담 분장 팀이 케첩을 좀비로 바꿔놓은 모양이었다. 몸은 숨 죽은 시금치처럼 늘어졌고, 한숨은 푹푹 땅을 찔렀다. 그리고 언제나 이럴 때였다. 세상이 내 뒤통수를 후려 까고, 숨겨둔 진짜 보스를 꺼내는 시점은.
뛰뛰뛰뛰뛰 탈탈탈탈탈
오래된 모터의 기계음과 동시에 경적소리가 났다. 주기적이고도 날카롭게. 고개를 돌린 곳엔 털털거리는 보스가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
도대체 도심 한가운데에 경운기가 있는 건 무슨 조화인가? 나는 세상이 준비한 진짜 보스에 얼이 나갔다.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보스는 내가 멍한 그 순간조차도 날 따라왔다. 경적이 고장 났는지 0.48초 단위로 소음을 울려대며
뛰뛰뛰뛰뛰 탈탈탈탈탈
경운기의 속도는 너무너무 빨라서 날 제치고 떠나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떨쳐내자니 적당히만 느렸다. 지나가길 기다리자니 출근시간이 아슬한 상황. 또 이놈의 경운기가 신묘한 게 내가 오른쪽 길로 돌아서니 제 놈도 오른쪽으로 꺾는 게 아닌가? 이 시점에서 난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경운기의 모터가 옮은 입은 연신 욕을 내뱉고 있었다. 짜증이 날 때 쉽게 눈물이 떠오른다면 그만큼 우울과 가까이 있다는 뜻이라던데…. 아니야. 저 정도 소음이면 없던 우울도 생기겠어. 빌어먹을.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난 세상에 존재하는 욕의 80% 정도를 뱉어내고 나서야 경운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경운기가 순순히 물러갔냐고? 설마! 경운기는 건물 입구까지 날 쫓아왔고, 내가 해방된 것은 건물에 들어서고 난 후였다.
“하….”
좀비의 썩어 들어가는 숨결이 엘리베이터를 메웠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그래도 막내가 인사를 빼놓을 순 없지. 쾌활을 가장한 짧은 인사마저 마친 뒤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 시간의 출근이 삼 년만 같았다. 삶이 힘든 날은 으레 그러듯 노트를 펴고 펜을 꺼냈다. 하지만 오늘의 짜증은 특히나 날카로웠다. 눈앞의 노트는 다 찢어버리고, 펜을 부숴서 모니터에 박아버리고 싶었다.
‘소음, 소음. 소음! 빌어먹을 놈의 소음!’
나는 정제되지 않는 짜증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 어떤 소리와도 멀어지리라. 내면의 고요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소리라도 말살할 수 있었다. 딱 그때였을 것이다. 흉폭한 분노에 덩달아 깨어버린 차가운 이성이 말을 건 것은.
-이봐, 네가 정말 모든 소리에서 멀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
있는 대로 찌푸린 미간, 좀비는 거칠었다.
-네 주위를 봐. 삐로롱 소리를 내며 열리는 자동문, 돌아다니는 발소리. 들쭉날쭉한 바닥. 곧 출근할 이들의 인사 소리. 네가 진짜 조용하게 있을 수 있다고? 여기서 제일 말단인 네가?
‘그건….’
말문이 막힌 내가 고개를 떨어트린다. 딱 그만큼 조용한 분노가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목소리는 내 질문보다 먼저 답을 내놓는다.
-때로는 널 파괴한 대상만이 유일한 치료제일 때가 있지. 넌 소리에서 멀어질 수 없어. 그럴 거면 차라리 좋은 노래라도 들으란 말이야.
내면에서 일어난 우스꽝스러운 문답(물론 어느 정돈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답은 신선했다. 소리로 파괴된 하루를 소리로 되돌린다? 그 독특함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내 심정만큼이나 베베꼬인 이어폰을 풀어냈다. 무수한 상사의 눈에 피해 한쪽을 귀에 꽂았다. 오늘의 노래는 악동뮤지션의 신곡이었다. 짧은 광고가 지나고, 부드럽게 변주한 캐논으로부터 그들의 노래가 시작됐다. 캐논을 잇는 피아노 소리와 목소리. 소리가 찢어놓은 날 보듬는 소리. 나는 한 곡을 다 듣기 전에 이미 웃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노래로써 소음을 정화하려는 이 순간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더디게 숨을 들이마셨고, 조금 참은 뒤, 조금씩 풀어주었다. 앞으로 남은 긴 하루를, 짜증만 내면 보낼 수 없지.
그들의 노래가 끝맺을 때의 나는, 이미 언제나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