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
4월 16일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다. 둘에서 셋으로. 아들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여러 특별한 날 중 생일에 특히 의미를 부여하는 아들에게 이날은,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일 년 중 가장 기대되는 행복한 날이다. 어제는 전부터 타고 싶어 하던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타러 갔다. 학교 빠지고 놀러 나간 데다가 날씨도 화창하니 즐거움 그 자체였다. 종일 만 보 가까이 걸어 피곤할 텐데도 생기 가득했던 아들은, 케이크 위 촛불을 한 번에 힘차게 불어 끄고 야무지게 두 조각의 케이크를 먹었다. 좋아하는 태권도 시범단 수업 후에는 생일 용돈으로 포켓몬 카드까지 사며 하루를 기쁨으로 채웠다. 충만한 시간을 보낸 아들은 “엄마도 잘 자.”를 외치며 미련 없이 하루를 마감했다.
같은 날, SNS에는 노란 물결이 가득했다. 슬픔과 위로, 기억하겠다는 다짐, 무책임한 국가에 대한 질타. 그런 마음들을 돌아볼 새 없이 정신없게 지나간 하루 위로 노란 리본이 나부낀다.
벌써 12년이 지났다. 당시의 학생들이 살아 있었다면 서른이 되었을 거란 말에 마음이 무너진다. 서른조차 많지 않은 나이인데 고작 열여덟 아이들이었다. 그저 방송에서 나오는 어른의 말을 믿었던 아이들이었다. 깊고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많은 이들이.
여전히 누군가는 그걸 왜 아직도 물고 늘어지냐고 한다.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뭘 바라는 거냐며 그 의도를 물고 늘어진다.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규명도 책임도 어느 하나 온전히, 납득할 수 있게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 일이 아니다. 모양을 바꾼 채 계속되고 있고, 그 누구라도 국가의 무책임 앞에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정당한 분노는 우리가 좀 더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여전히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곳에 매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비록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위로하기 위해, 잊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
어제의 일정을 SNS에 올리는데 유독 신경이 쓰였다. 왠지 유희를, 기쁨을 표현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괜히 아들 생일 운운하며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올라왔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우연히 고개를 들어 본 하늘에서 희미한 하트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위에 수차례 선을 그었다 지웠다, 글을 썼다 지웠다 고작 네 줄을 적었다.
마음껏 기뻐하지도, 제대로 슬퍼하고 분노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어쩐지 부끄럽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혹 실수할까 봐, 괜스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변명 뒤에 숨어 에둘러 무난한 말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고, 늦게나마 마음을 더한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정돈될 쯤이면 아들에게도 좀 더 다정하고 단단하게 기쁨과 슬픔의 공존을 알려줄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