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어] 흥미와 불편

'데이미언 허스트' 전에 다녀오다

by 류하


흥미

2.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수반하는 관심.


불편

1.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

2.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로움.




평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정시를 비껴가면 사람이 좀 덜하려나 싶었는데 입장을 위한 줄은 여전히 길었다. 1층에서 챙긴 브로슈어를 꼼꼼하게 읽다 보니 어느새 게이트가 눈앞이었다.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꺼내 예매티켓 링크를 열었다. 게이트에 있는 직원은 전시장 안쪽을 향해 "줄 서지 말고 자유롭게 관람하세요."를 반복해 외치고 있었다. 힘들겠구만.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제목과 코멘트, 작품을 차례로 훑는다. 쓰레기더미 속 물건을 콜라주한 초기작 중 작가 본인이 마음에 들어 다시 사들였다는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중 무엇이 작가의 발을 끝내 붙잡았을까. 혹은 어떤 기억이.


큰 감흥 없이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처음으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투명한 아크릴 박스였다. 중간에 검은 원 다섯 개가 뚫려 있고, 한 끝에는 작은 다섯 개의 구멍이 뚫린, 연결된 듯 분리된 공간들. 투명하게 속이 다 보이는데도 묘하게 답답함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르면서 공포감에 흠칫하기도 했다. 허스트는 부재를 통해 존재를 상상케 하는 방식을 자주 활용하는 듯 보이는데, 이 작품에서 특히 직관적이고 깔끔하게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의 제목은 <너는 나를 피하고, 나는 너를 피한다>. 미로 같은 공간, 서로의 배척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잔인함, 희망과 절망의 교차... 어쩐지 자꾸 곱씹게 된다.


관람자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쉼 없이 작동하는 모터로 띄워져 있는 탁구공과 풍선, 풍선 아래 가득 꽂혀있는 진짜 칼. 전시장에는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진짜 시체의 사진. 그러나 기이한 불편함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2 전시장에서는 이번 전시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상어와 소머리, 파리떼의 시체를 볼 수 있다. 그 전체적인 모습이야 매체를 통해 워낙 많이 소비되었기에 딱히 더 놀랍거나 신기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굳이 이 전시를 현장에 가서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가까이에서는 디테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상어의 몸에 난 상처와 피부의 주름, 그리고 눈. 무섭다기보다는 슬픈, 아니 서글픈. 소머리 시체의 눈 또한 다르지 않다. 거기에 더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죽음. 끊임없이 꼬물거리고 먹이를 향해 날아가고 또 하나의 시체가 되어 쌓이는 파리들.

그 모습을 소비하는 우리가 있다.


어찌 보면 1, 2부에 비해 3부의 전시는 외견상으로는 깔끔해 보인다. 허스트스럽지 않은 회화와 멀리서 보면 파스텔톤의 반짝이는 원, 진열장 안에 차곡차곡 놓인 약과 의료도구와 해골. 그럼에도 불편한 기분은 점점 고조됐다.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지나쳤을 '개인소장'이란 단어가 자꾸만 눈에 걸렸다.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의료도구들이 투명한 장식장 안에 강박적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다. 가만히 그 장을 들여다봤다. 일 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이유 모를 불안과 초조함이 몸을 휘감는다. 다이아 해골, 나비 스테인드글라스, 은으로 만든 조각상, 해부된 천사... 유명작은 되려 감흥이 없었다. 이 공간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겠구나, 라는 생각 정도.


생명 윤리, 예술과 상업 등 현대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미언 허스트. 국현미의 전시값이 올랐다느니, 그 값 보고도 못 볼 전시라느니, 도대체 왜 국현미에서 이 따위... 등의 혹평과 역시 허스트, 이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보게 되다니... 류의 감탄이 공존한다.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목구멍에 걸린 가시의 이물감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터부에 막힌 듯 답답한 마음 또한.




전시 중간에 이런 글이 있다.

"때로는 선을 넘어봐야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경계를 시험해 봄으로써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거침없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우나, 그걸 소비하는 행태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불쾌할 수 있는 전시다. 판단은 직접 본 후에.

"진실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함을 증명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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